雪國의 눈보라 속을 걷다... 한라산 겨울 산행기
(편집자 주: 지난 1월12일 당일치기 겨울 산 한라산을 다녀왔다. 눈이 많이 내려 입산통제이나 사정사정을 해 세 사람이 힘든 9시간을 어리목에서 윗세오름까지 다녀왔다. 그 과정을 엮어 본다.)
*1월11일 제주 도착 하룻밤을 자고 새벽 5시,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한라산을 3 백회 산행한 한라산 달인 김봉선 사진작가 안내로 산행은 시작됐다. 늦은 인사지만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라산 4계를 담은 작품 CD 감동 이였습니다. )
* ‘한라산에는 한라산은 없다.’ 맹렬한 기세로 내리는 폭설이 나무, 바위, 사소한 것 하나도 남기지 않고 꼼꼼히 눈으로 지우고 있다. 눈으로 덮여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눈으로 뒤덮인 세상, 설국으로 입국한다. 비자(?)검사 후 입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통 사정을 했다. 또 한라산을 찾는 이유를 진득하게 설명하니 조금 가다가 위험요소가 생기면 바로 하산한다는 조건부 비자가 나왔다. 바리케이드가 치워지고 설국으로 들어섰다.
등산로는 보이지 않았으나 감으로 나선 길이라, 눈 아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러셀은 없고 길을 알려주는 건 붉은 깃발을 꽃은 쇠파이프다. 어떤 곳은 겨우 깃발만 밖에 나와 있다. 오를수록 감탄이 난다. 싸늘한 공기와 푹푹 빠지는 발길은 익숙해지는 데 제법시간이 걸린다. 눈은 소리마저 지운 듯 고요하다. 거친 숨소리와 “뽀드득” 하는 러셀소리가 커진다. 아름답던 설경도 눈에 익자 기쁨을 주진 못한다.
어리목 숲은 섬세한 크리스털 숲으로 탈바꿈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크리스털 숲을 빠져 나왔다. 무려 3시간여 걸린 것 같다. 보통 1시간이면 통하는 길이다.
사제비동산. 눈발이 날린다. 바람은 스노 샤처럼 땅을 훑기도 하고 매섭게 얼굴을 때리기도 한다. 혹독한 눈의 파라다이스. 걸을 맛이 난다. 겨울산은 겨울다워야 한다. 눈 없는 겨울 산을 걷기에 편할지 모르나 경치는 제로에 가깝다.
아무리 조심스레 디뎌도 간혹 발이 크레바스처럼 푹 들어가 허리까지 잠기곤 한다. 무릎으로 눈을 다지며 천천히 빠져나와 다시 걷는다. 한 번씩 그렇게 빠질 때 마다 호흡이 리듬을 벗어난다. 잠시 호흡을 조정하면서 깃발을 찾는다.
바람이 화난 듯 거친 소리를 내며 드러난 피부를 공략한다. 서서 벗기도 어렵고, 춥다고 옷을 더 꺼내 입기도 마땅찮다. 손끝이 시리다. 멈추면 걷느라 몰랐던 추위가 잔인하게 덮쳐온다. 눈 찾아 날카롭게 파고든다. 앞사람과 몇 미터만 멀어져도 페이더 아웃된다.
시야를 5m를 넘지 않아 사진작업이 어렵다. 갈수록 눈이 깊다. 발이 빠져 체력소모가 크다. 눈썹에 고드름이 맺혀 불편하다. 걸음이 쉽지 않다. 맞바람이라 눈 뜨고 있기 어렵다.
만세동산을 통과하자. 앞이 보이지 않는다. 힘들었다. 한참이나 멍하니 서서 가족들을 생각한다. 이렇게 하여 조난을 당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깃발만 찾는다. 그렇게 하기를 2시간여 겨우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일행인 김봉선 사진작가는 먼저 도착해 하늘이 뚫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컵 라면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를 보이지만 마음은 안정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체력은 아직 괜찮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대피소에 걸려 있는 기상예보판은 영하 14도를 넘고 있었고, 내일(13일)도 폭설로 입사통제를 예보하고 있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려가야겠다. 고 결정했다. 밖은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백록담은 들내지 않고 ‘한번 고생해 보세요’하는 것 같았다. 역시 입산통제 이유가 있었다. 김봉선 작가는 좀 있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내려가겠다. 며 어리목에 도착 후 전화를 부탁했다. 옷매무새를 고쳐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오면서 러셀을 한 탓에 수월하리라 생각했는데 눈이 덮혀 깃발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참서서 깃발을 인식하면서 더듬더듬 내려왔다. 한참 내려 오다 만세동산 포인트를 놓칠수가 없어 앞이 보이지 않아도 카메라를 들고 한 15분 작업을 했다. 그러자, 앞에 간 일행이 나를 찾아 난리가 난 것이다. 혹시 조난을 당했을 것이다는 염려에서 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제비동산에 다달아 무려 4시간만에 어리목 광장에 도착한 것이다.
무려 9시간을 등산길에 소비한 것이다.
어찌보면 무지했고 또 용감한 것 같다.
몇 차례 겨울 한라산 겨울 산행을 했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이 산행을 하고 나서, 몸 컨디션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게 한라산이 있다는 것은 유일한 숨통인지 모른다.
눈 내린 세상이 밝은 이유는,
어두운 곳에서부터 하늘빛이 고이기 때문이다.
눈 내린 세상이 따뜻한 이유는,
차갑고 낮은 곳에 하늘의 손길이 더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눈 내린 세상이 평화로운 이유는,
명암의 경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눈 내린 한라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늘을 넓히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제주에 살다가 한라산에서 흩어지고 싶습니다.
다시 채비를 하고 있다.
2월에 한번 기상예보를 체크하고 한라산을
다시 찾아 갈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