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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겨울바다 이야기

'창의 노트'
지난달 20일 제주 한라산 취재 갔을 때의 이야기다. 폭설로 산행통제가되고, 어느 한적한 바닷가 '팬션'에서 뒤척이는 밤을 지샜다. 무었때문에 이곳까지 왔을까. 내일 혹시 한라산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갖가지 삶들이 교차속에 겨울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보냈다. 그 때 기억과 글감을 뒤졌다. 아마도 그곳,제주시 '용두암'근처 '팬션'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불빛에 젖어든 그 겨울바다 파도소리...... 미적미적하다 그런 추억이 그리워 기록해 둔다.


겨울바다가 뒤척이며 돌아눕는 소리에 오늘도 불면의 밤을 보낸다.
무엇 때문에 바다는 깊은 시름에 잠 못 들고 뜬눈으로 이 겨울밤을 지새우는 것일까. 수면 위로 쉴새없이 불어닥치는 바람의 낮은 음조의 웅얼거림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어제의 진실이 오늘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사회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도 변하고 진리도 변한다. 어제의 가치가 오늘은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오늘의 진리가 내일에도 변함없는 진리가 될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언젠가 어느 시인의 "유언"이라는 시를 읽고 크게 감동 받은 일이 있다.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글이어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오래 전에 읽은 시여서 작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 내용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된다. 할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제발 너만은 데모도 하지 말 것이며 아무 문제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살아가라고 늘 당부한다. 마치 봄볕에 졸고 있는 고양이 마냥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 아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유언하듯 너만은 늘 문제를 일으키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늘 문제를 일으키면서 움츠리지 말고 과감하게 현실에 도전하는 자신만의 삶을 생생하게 살아가라는 의미였다.

인생은 현실과 부대끼면서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지혜를 하나하나 터득해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통제하고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실현이나 자기성찰을 향한 탐색을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듯이 말이다. 심지어는 어른들의 조바심 때문에 아이들을 저급한 수준으로 묶어놓고 아예 자신의 정신적 성숙을 향한 여정을 가로막기까지 한다.

사실 우리는 순간순간 살아있음의 체험을 통해 생명력을 느낄 권리가 있다.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고 피부에 느껴지는 대로 느끼며 귀에 들리는 대로 들으면서 자신만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신적인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터득하고 배우고 있는 중이다.

불교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를 반문하면서 살아가라고 이른다.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자신의 내면과 조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은 어떠한가? 지나치게 아이들을 억누르고 억압해,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사전에 차단시켜 버리지는 않는가? 심히 우려된다. 오로지 책상 앞에서 배우는 것만이 진리이며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모른다. 잘못된 어른들의 교육이 아이가 성인이 된 후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살게 할지는 몰라도 결국 내면의 빈곤, 영혼의 빈곤, 그리고 시간의 빈곤 속에서 허덕이게 만든다.

깨어있는 삶은 고여있는 썩은 물이 아니라 고요히 흐르는 맑은 물과 같은 것이다. 진정으로 살아있는 삶, 생생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맑은 정신을 갖게 한다.

나는 불면의 밤을 뒤척이며 생각해 본다. 하얗게 내린 눈이 메마른 나뭇가지에 꽃을 피우고 겨울 향기를 뿜어낸다는 것을. 온 가지가 부러지는 아픔을 견디고 막 피어낸 눈꽃이야말로 온 세상을 눈부시게 만들어 더러운 것들을 다 덮어버린다. 하얀 눈발이 가장 약하게 보이지만 가장 약한 것이 아름드리 나무를 뿌리 채 뽑히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있다. 실로 약하고 부드러운 것의 위대함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마치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위대한 것처럼 말이다.

# 어제(3월4일)도 눈이 그리워 경주에 지인들과 나들이 깄다. 불국사 설경을 찍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들은 대관령이다 하는 좋은 곳 찿아 가는 데...부득이 우리 일행은 불국사 인근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새벽 밤사이 소리없이 찿아든 눈님을 만날려 했으나. 심술궂은 눈님은 오지 않고, 아쉬움만 남긴채 돌아서게 하였다.
이글을 정리 하는 이 시간, 부산에도 심술맞은 눈님이 소리없이 막 찾아 들고 있다. 내일 아침에 설경속 부산을 맞으러 . 천마산에나 갈까하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