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 해안도로를 따라 월내쪽으로 가다보면 연초록색 생명들이 끝없는 바다를 이루며 산들바람에 ‘보리밭’이 일렁거리고 있다.
5월의 보리밭, 그곳에 들려 보리밭을 밟다보니 귓가에 저절로 맴도는 가곡이 하나 있다. 박화목작사, 윤용하 작곡 ‘보리밭’이 그것이다. /보리밭 사이 잇길로 갈어 가면/ 뉘-부르는 소리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에 외로워 휘바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하늘만 눈에 차누나./
보리피리 불며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던 사람이라면 벌써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가 함께 뒹글고 뛰놀던 친구 녀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밟혀 올 것이다.
삘리리 삘리리 보릿대 하나 쑥 뽑아 불던 보리피리의 소리를 기억하십니까. 보리떡, 콩보리밥...,그리고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아해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보리서리..., 배고팠던 유년의 기억들은 이제 ‘보리밭’물결을 따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흙냄새 가득한 보리밭에 서면 묻어나는 풋풋한 보리냄새... 보리밭엔 가난했지만 마음은 넉넉했던 고향의 풍경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굶기를 밥먹듯 했던‘ 보릿고개’의 애환은 이제 추억이 됐지만, 그 서글픈 배고픔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 아련한 기억처럼 푸른 보리낱알이 익어가기 시작하면 봄도 더욱 깊어간다.
보리밭에서 자라는 보리는 종일 누웟다 일서섰다가 한다. 바람에 쓰다듬겨 초록빛 파도를 일으키는 것이다. 보리와 바람에게는 그것이 즐거운 장난이다. 깔깔깔..., 누우며 눕히며, 일어나며 일으키며 바람과 보리가 하루종일 웃음소리를 낸다. 황금빛깔 웃음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을 보면 보리는 안색을 좋게하고 피부를 곱게하고 매끄럽게 한다고 적혀 있다. 뿜만 아니라 피를 맑게하고 핏속의 독기를 해독하며 혈맥을 젊게하여 풍기를 예방한다고 했다.
보리는 5월 중순 이후부터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 6월초순 수확기를 맞는다. 부산지방에는 기장월내 가는 길에, 그리고 많은 곳은 경남 밀양 수산지방이다. 기회가 있으면 한번 가봄직하다.
오늘(22일) ‘보리밭’을 거닐며, 지인은 말한다. ‘옛날 사랑의 역사는 보리밭에서 이뤄졌다고 쓰세요,’ 또 보리서리를 한 아해들이 보리, 밀을 서리, 불에굽어 손으로 후후--하며 먹고 나면 얼굴이 숫검뎅이가 묻어난다'고 ...
그 시절이 그리운 까닭은 무엇일까. 아니 나이 탓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