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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그 모습 한번 보고 싶어라

여름이면....연꽃을 본다. 경주 ‘서출지’ 경산 ‘삼천지 못’를 비롯하여 여러 곳의 연꽃이 무수히 꽃등을 밝히는 것을 연상(聯想)한다. 연꽃은 그 기품(氣品)으로나 아름다움으로나 향기나 꽃중의 꽃으로 꼽혀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상찬(賞讚)받는다.

/나는 연꽃을 사랑한다. 그것은 연꽃이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의지를 고치지 않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속은 비어서 사심(私心)이 없고 가지가 뻗질않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그윽한 향기 멀리 퍼져 더욱 청정(淸淨)하고, 그의 높은 자세를 누구도 업신여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 연꽃을 몇 사람이나 사랑할지 모를 일이다.“주무숙(周茂叔)/애련설 愛蓮說)에서”


이런 연꽃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전래(傳來)되었을까.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서 힌트를 얻는다. /부처를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뒤 굶어 죽어가는 한 여인의 옷을 얻어 입게 된다. 옷을 빨려고 가까운 못으로 걸어가자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났다. 그로부터 스님들은 그 못에 이르러 가사(袈裟)를 물에 적셔 입고 연꽃 씨앗을 얻어가는 것이 순례(巡禮)의 절차였다. 순례 유학승에 의해 이 연꽃 씨앗이 운반되어 한반도에 뿌려졌을 것이다./

연꽃을 달리 ‘부용(芙蓉)’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시가 보인다.
부용꽃 피어 연못가득 붉으니
사람들은 내모습보다 예쁘하고는
아침에 내가 둑 위를 딸라 거닐면
어찌하여 사람들은 꽃은 보지 않을까.
쓴 사람은 조선시대 성천고을 기생으로 그 이름 역시 ‘부용’이라했다. 사람들이 그 예쁘다는 꽃은 보지 않고 오히려 자기만 쳐다본다는 뜻을 비튼 말 맵시가 자못 어여쁘다. 그 모습 한번 보고만 싶어라.

부산엔 금정구 ‘두구동 연꽃’이 인기를 모았었다. 그러나 관리 탓인지, 교잡종이 늘어나며 볼품이 없어졌다. 그리고 철마 지나는 길‘ 보림사’란 선원이 밭을 갈아 연꽃을 조성했으나. 신통치 않다. 연꽃은 경산‘삼천지’ 그리고, 경주 등에 여름이면 볼 수 있다. 연꽃도 해 걸이 탓인지 해를 더할수록 그리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뭣 모르고 꽃이 아름다워, 다닌 그 시절이 무척 그리워진다. 올해도 부여 ‘궁남지 연꽃’이 좋다는 이야기가 들리나, 가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어 연잎에 맺힌 물방울을 그리면 잠을 설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