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 Think

꼭.... '미리 보는 유언장'


안중근은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그는 “내가 죽은 뒤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에 묻어다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이 유언은 이뤄지지 못했다. 감옥 뒷산에 썼다는 안 의사 묘소의 위치가 묘연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야 하고, 당신들은 남아야 하는데, 누가 더 좋은 곳으로 가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신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유언이다. 이 말을 하며 “친구, 내가 닭 한 마리를 꾸어 먹은 것이 있으니, 그것 좀 갚아주게나”라며 독배를 들었다.“죽은 사람들의 말은 완벽한 화음처럼 다른 사람들을 집중하게 한다”
셰익스피어는 희곡 ‘리차드 2세’의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유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통속적인 의미에서 죽음에 임하여 남기는 말을 뜻하는 유언(遺言)은 민법에 따라 만 17세 이상의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유언의 방식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등 5가지다.그러나 유언자의 사망 후 효력이 발생되기 때문에 죽음 자체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라는 점에서 유언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서 9·11 테러 참사 이후 젊은 사람들이 앞 다퉈 유언장 작성을 위해 변호사에게 의뢰하는 사례가 급증했던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인 101명이 미리 쓴 유언장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네가 아주 어려서 너를 낳아 준 네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에 네게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사랑과 행복을 안겨 주지 못한 점이 늘 미안했다”(‘접시꽃 당신’의 시인 도종환)

“나의 관 위에 꽃 대신 시집 한권을 올려놓으면 어떨까요? 책들은 도서실로 보내고 일기장들은 태우고 아까우면 부분적으로 출판을 하고…”(이해인 수녀)

“수의는 엄마가 준비해 둔 것을 입혀라. 부의금은 절대 사절해라, 화장해서 재는 엄마가 아끼는 정원의 주목 밑에 뿌려라,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된다”(소설가 한말숙)

이처럼 미리 작성된 유언들은 실질적인 것에서부터 엄격하게 당부하는 말, 애틋한 자식 사랑, 자신의 문학에 대한 소회 등 다양하다. 이들이 미리 쓴 유언장을 보며 살아 있을 때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하는 까닭을 자연스럽게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