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 보이지만 결코 큰 것이 아니다. 커 보일 뿐 작은 것이 아니다.지극히 작은 것, 작디작은 것이다. 하지만 어떤 모양을 갖추고 실체로 우리에게 오는 것은 아닌 그것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것처럼 느낀다. 언덕 너머 무지개나 허공에 떠 있는 신기루처럼 환영으로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까이. 아주 가까이, 바로 눈앞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다만 느낌으로 와 가슴 속에 스며들뿐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아기의 해맑은 웃음으로 현현(顯現)한다. 그 웃음을 바라보는 엄마의 두 눈에 그것은 꽃으로 피어난다.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두 손끝에, 가을 걷이하는 그들의 가슴을 채우며 충만한 설렘으로 그것은 온다. 초등학교의 입학식장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재잘거림에서도 찾을 수 있는 그것은 언제나 맑고 밝아 가슴 뛰게 하는 만큼 희망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그것은 어느 여름날, 비 갠 뒤의 초원을 맨발로 내달리는 아이의 환호하는 모습을 하기도 한다. 발다박에 닿는 대지의 모성(母性)에 아이는 엄마를 느낄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벅찬 것. 그렇게 넘치는 그 무엇으로 온다.
수선공의 손길에서, 집배원의 오토바이 소리에서, 미화원의 콧노래에서,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뒷모습에서 그것은 늘 흥겹게 움직이면서 우리에게 눈웃음을 짓고 있다. 붕어빵 장수의 손놀림에도, 재래시장 어물가게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노파의 두툼한 옷 속에도 그것은 속속들이 파고든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쉰 목소리에 깃들어 있기도 한 그것은 순간순간 일하는 줄거움으로 온다. 가르치는 즐거움, 아이들의 혼돈을 흔들어 깨워주는 자의 그 숭고한 몸짓이 바로 그것일 수 있다. 그래서 교사는 가진게 없지만 가르치는 것 자체만으로 위안이고 기쁨이다.
그것은 친구와 혹은 동료 사이의 솔직한 대화 속에 싹트기도 한다. 그 대화가 진실하고 주고받는 말이 신실(信實)한 것일수록 그것은 자꾸 커지려 하고, 가슴 벌려가며 우리에게 제 진면목을 드러내려 한다. 대화 속에 녹아드는 눈웃음은, 목청 낮춘 그 은밀한 영혼의 교감은 또 얼마나 향기로운 것인지...,
책 읽는 소녀의 얼굴에도 그것은 아주 난만한 낌새로 어른거린다. 책갈피에 고여 있는 그 고운 눈길에 그것은 제법 성숙해진 모습을 하고 내려앉아 있 다, 모래를 헤쳐 금을 찾는 이의 마음에 그것은 두근거림으로, 목마름으로 와, 그 두근거림은 감동이고 목마름은 성취임을 넌지시 일러준다.
산책길에 섰을 때도 그것은 눈앞에 걸려 있다. 내딛는 걸음걸음 그것은 줄곧 뒤를 따른다. 강아지처럼 꼬리 치며 뒤를 좇는다. 살랑거리는 바람으로, 파돗소리에 실려서, 혹은 봄날 마당가 가지 끝에 새소리로 지저귀거나, 때로는 눈앞에 놀빛을 펼치면서 그것은 온다. 서산마루에 걸린 해에도 그것은 늘 어여쁜 얼굴과 맵시를 뽐내며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행복이다. 사람들이 목매는 행복의 모습이다. 갈구하는 만큼 그것은 멀리 있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주 가까이에, 눈앞에 있다.
행복은 큰 개 아니다. 작은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내가, 내 마음이 빚는 그 무엇이다. 또 언제나 우리 곁에, 쉬 손이 닿는 곳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작고 예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