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모든 일에 올바른 사리판단(事理判斷)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입니까, 사물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올바른 판단에서 올바른 행동이 나오고 올바른 행동에서 올바른 결과가 생기고 올바른 결과에서 행복이 옵니다. 그릇된 판단에서 그릇된 행동이 나오고, 그릇된 행동에서 그릇된 결과가 생기고, 그릇된 결과에서 불행이 옵니다.
그래서 판단(判斷)은 행동의 어머니요. 행동(行動)은 판단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에 대하여 공정한 사리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세상에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옥중기(獄中記)를 쓴 영국의 유명한 문인 ‘오스카 와일드’의 다음 말은 명언 중의 명언입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관계없는 일에 대해서 참으로 공평한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원고건 피고건 소송의 당사자는 공평한 판단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3자의 공정중립의 판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판단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실판단(事實判斷)이요. 또 하나는 가치판단(價値判斷)입니다. 이 사람이 김 아무개다. 이것은 사실판단입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또는 나쁜 사람이다. 이것은 가치판단입니다. 사실판단은 쉽지만, 가치판단은 어렵습니다. 가치판단은 왜 어렵나.
판단자의 주관(主觀)과 감정(感情)과 이해관계(利害關係)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눈으로 사물을 보면 공평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나의 주관적 감정과 이해관계를 떠나서 공정하고 냉철하게 사물을 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사람은 저마다 자기 나름의 판단척도와 판단기준을 가지고 됐다 안됐다. 좋다 나쁘다, 정이다 부정이다. 진리다. 허위다 는 판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판단척도와 판단기준입니다. 과연 나는 올바른 척도와 기준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하고 있는가.우리는 누구나 편견(偏見)에 사로잡히고 선입관념(先入觀念)에 지배되고 고정관념(固定觀念)의 포로가 되어 편협한 생각과 그릇된 판단을 내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나 자신의 판단기준과 판단척도를 냉정예리(冷靜銳利)하게 분석하고 비판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얄팍한 경험과 불확실한 지식과 미숙한 사고의 협량(狹量)한 마음을 가지고 사물을 오판하는 일이 세상이 얼마나 많습니까.그리스도 말과 같이 남의 눈의 조그만 티끌은 보면서 나의 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한다.
우리는 남에게 대해서는 준엄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남을 모멸侮蔑)의 눈으로 보고, 나를 과찬(過讚)의 눈으로 봅니다. 타인은 사정없이 비판하면서 자기비판은 게을리 합니다.
나의 잘못은 덮어두고 남의 허물을 찾기 바쁩니다.나의 부패는 거론하지 않고, 남의 부패만 소리높여 공격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요, 범하기 쉬운 과오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베이컨’은 인간을 편견(偏見)의 동물이라고 지적하고 편견에서의 해방을 무엇보다 강조했습니다.
편견의 노예가 되지 말라,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지 말라, 선입관념에 사로잡히지 말라.냉소의 안경을 끼고 사물을 보는 사람, 부정(否定)의 눈으로 민족을 보는 사람, 증오(憎惡)의 마음으로 동포를 보는 사람, 비관의 감정으로 역사를 보는 사람, 체념(諦念)의 자세로 인생을 보는 사람, 허무(虛無)의 정신으로 존재를 보는 사람, 우리는 그런 눈으로 사물을 보지 않아야 합니다.
따뜻한 관심의 눈, 깊은 애정의 마음, 폭넓은 긍정의 정신, 너그러운 관용(寬容)의 감정, 자신만만한 낙관의 자세로 사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한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양식인의 자세입니다. 그것이 민주인의 태도입니다. 그것이 자유인의 정신입니다.
그런 마음이 결여되면 아집(我執)에 사로잡히고 독선에 빠지고 독단에 흐르고 오만에 휩쓸립니다.
그래서 옛사람은 명경지수(明鏡止水)와 허심탄회(虛心坦懷)의 지혜를 강조했습니다. 맑은 거울과 조용한 물과 같은 마음으로 사물을 공정하게 보라.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평정한 정신으로 냉철하게 사물을 보라. 이것이 사물을 바로 보는 눈이다.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올바른 판단에서 올바른 행동이 나오고 올바른 행동에서 올바른 결과가 생기고 올바른 결과에서 행복이 옵니다. 그릇된 판단에서 그릇된 행동이 나오고, 그릇된 행동에서 그릇된 결과가 생기고, 그릇된 결과에서 불행이 옵니다.
그래서 판단(判斷)은 행동의 어머니요. 행동(行動)은 판단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에 대하여 공정한 사리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세상에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옥중기(獄中記)를 쓴 영국의 유명한 문인 ‘오스카 와일드’의 다음 말은 명언 중의 명언입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관계없는 일에 대해서 참으로 공평한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원고건 피고건 소송의 당사자는 공평한 판단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3자의 공정중립의 판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판단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실판단(事實判斷)이요. 또 하나는 가치판단(價値判斷)입니다. 이 사람이 김 아무개다. 이것은 사실판단입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또는 나쁜 사람이다. 이것은 가치판단입니다. 사실판단은 쉽지만, 가치판단은 어렵습니다. 가치판단은 왜 어렵나.
판단자의 주관(主觀)과 감정(感情)과 이해관계(利害關係)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눈으로 사물을 보면 공평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나의 주관적 감정과 이해관계를 떠나서 공정하고 냉철하게 사물을 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사람은 저마다 자기 나름의 판단척도와 판단기준을 가지고 됐다 안됐다. 좋다 나쁘다, 정이다 부정이다. 진리다. 허위다 는 판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판단척도와 판단기준입니다. 과연 나는 올바른 척도와 기준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하고 있는가.우리는 누구나 편견(偏見)에 사로잡히고 선입관념(先入觀念)에 지배되고 고정관념(固定觀念)의 포로가 되어 편협한 생각과 그릇된 판단을 내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나 자신의 판단기준과 판단척도를 냉정예리(冷靜銳利)하게 분석하고 비판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얄팍한 경험과 불확실한 지식과 미숙한 사고의 협량(狹量)한 마음을 가지고 사물을 오판하는 일이 세상이 얼마나 많습니까.그리스도 말과 같이 남의 눈의 조그만 티끌은 보면서 나의 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한다.
우리는 남에게 대해서는 준엄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남을 모멸侮蔑)의 눈으로 보고, 나를 과찬(過讚)의 눈으로 봅니다. 타인은 사정없이 비판하면서 자기비판은 게을리 합니다.
나의 잘못은 덮어두고 남의 허물을 찾기 바쁩니다.나의 부패는 거론하지 않고, 남의 부패만 소리높여 공격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요, 범하기 쉬운 과오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베이컨’은 인간을 편견(偏見)의 동물이라고 지적하고 편견에서의 해방을 무엇보다 강조했습니다.
편견의 노예가 되지 말라,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지 말라, 선입관념에 사로잡히지 말라.냉소의 안경을 끼고 사물을 보는 사람, 부정(否定)의 눈으로 민족을 보는 사람, 증오(憎惡)의 마음으로 동포를 보는 사람, 비관의 감정으로 역사를 보는 사람, 체념(諦念)의 자세로 인생을 보는 사람, 허무(虛無)의 정신으로 존재를 보는 사람, 우리는 그런 눈으로 사물을 보지 않아야 합니다.
따뜻한 관심의 눈, 깊은 애정의 마음, 폭넓은 긍정의 정신, 너그러운 관용(寬容)의 감정, 자신만만한 낙관의 자세로 사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한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양식인의 자세입니다. 그것이 민주인의 태도입니다. 그것이 자유인의 정신입니다.
그런 마음이 결여되면 아집(我執)에 사로잡히고 독선에 빠지고 독단에 흐르고 오만에 휩쓸립니다.
그래서 옛사람은 명경지수(明鏡止水)와 허심탄회(虛心坦懷)의 지혜를 강조했습니다. 맑은 거울과 조용한 물과 같은 마음으로 사물을 공정하게 보라.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평정한 정신으로 냉철하게 사물을 보라. 이것이 사물을 바로 보는 눈이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