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트-
오래전 사진(7-8년전)입니다. '제주 성산 시흥 조개체험장'입니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갯벌이 싱싱했는데,
지금은 싱싱함이 사그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서글픈 일이죠.
오래전 사진(7-8년전)입니다. '제주 성산 시흥 조개체험장'입니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갯벌이 싱싱했는데,
지금은 싱싱함이 사그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서글픈 일이죠.
두 눈만 멀쩡히 뜨고 있으면 무얼하겠습니까.
진실로 보아야 할 것을 외면하는 마음의 근시가 많은 턱에,
눈에 보이는 모습만이 아닌 그너머의 다른 모습,
보이는 것 뿐만이 아닌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불교용어로 '개안'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정녕 우리가 어떤 것을 잘
보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은 마음의
눈을 통해서만 보이니까요.
그러니까 개안이라는 말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뜬다는 말입니다.
꽃을 보되 그 겉모습만 보지말라는,
꽃속에 감춰져 있는 열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왜 그 꽃이 피어났을까 하는 본질까지 보라는,
어찌보면 개안이라는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마음을 열면 쉽게 이뤄지니까요. 그 쉽고 간단한 이치를
우린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진심은 있습니다.
잘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자기의 본모습은 있습니다.
그 진심을 서로 확인하고 확인받을 때
외로움의 높이도 자연 낮아지게 되지 않을까요.
서로간에 쌓아 놓았던 높은 벽,
그 벽도 조금씩 허물어 질 것입니다.
진실로 보아야 할 것을 외면하는 마음의 근시가 많은 턱에,
눈에 보이는 모습만이 아닌 그너머의 다른 모습,
보이는 것 뿐만이 아닌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불교용어로 '개안'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정녕 우리가 어떤 것을 잘
보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은 마음의
눈을 통해서만 보이니까요.
그러니까 개안이라는 말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뜬다는 말입니다.
꽃을 보되 그 겉모습만 보지말라는,
꽃속에 감춰져 있는 열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왜 그 꽃이 피어났을까 하는 본질까지 보라는,
어찌보면 개안이라는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마음을 열면 쉽게 이뤄지니까요. 그 쉽고 간단한 이치를
우린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진심은 있습니다.
잘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자기의 본모습은 있습니다.
그 진심을 서로 확인하고 확인받을 때
외로움의 높이도 자연 낮아지게 되지 않을까요.
서로간에 쌓아 놓았던 높은 벽,
그 벽도 조금씩 허물어 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