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춘설(春雪)은 꽃보다 오히려 다감했다.
부드러운 털깃처럼 따스한 눈발, 흰 설경속에서도 우리는 봄을 본다.
그것은 겨울의 마지막 잔치, 그것은 겨울의 마지막 추억!
춘설은 땅이 아니라 나뭇가지에서 그대로 꽃이 된다.
부드러운 털깃처럼 따스한 눈발, 흰 설경속에서도 우리는 봄을 본다.
그것은 겨울의 마지막 잔치, 그것은 겨울의 마지막 추억!
춘설은 땅이 아니라 나뭇가지에서 그대로 꽃이 된다.
*눈 내린 부산 설경 취재기*
부산지방에 1904년 기상관측소가 생긴 이래 101년만에 최고 폭설(37.2cm)이 내렸다. 눈이 내린 5일 밤, 6일 오전까지 부산시내 교통망은 거의 마비 상태였다. 항공편도 6일, 50편이 결항되었고, 국내 컨테이너 물동량의 80%를 처리하는 부산항 신선대 부두, 감만 부두, 자성대 부두 등 전부두에서 5일 오후 5시부터 6일 낮 12시까지 수출입,화물 하역작업이 전면 중단됐다가 정상화됐다. 이처럼 부산지방에 폭설이 덮친 것이다.
지난 4일밤 기상특보는 경북 지방인 경주 지역 대설주의보를 방송전파에 실어 보냈다. 그리고, 지인(홍덕기 사진작가)의 "불국사 인근에서 하룻밤 숙박하고, 다음날 불국사 설경을 한컷하자"는 유혹(?)에 끌려 오후 9시경 경주에 갔다.
아니, 속내를 털어놓자면 겨울 속의 불국사 정경을 찍고 싶은 해묵은 소망 때문이었다. 눈 쌓인 단풍나무와 어우러지는 절의 자태를 상상하며 늘 설레였으나, 기회가 닿지 않아 찍어보질 못하였다. '언제 한 번 찍어보나'라는 마음이 늘 고여있었던 나였으니, 마른 잎에 불붙듯, 뛰듯이 날듯이 경주로 달려갔다. 그것이 4일 밤이었다.
어쨌든 심드렁한 마음으로 저녁을 넘기고 있는데, 진한 회색 구름이 부산 하늘을 덮어가는가 싶더니 오후 7시를 넘기자 함박눈이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했다. 지인들로부터 ‘다시 경주에 가자’는 연락이 왔다. 직전까지 품었던 미련은 어디로 사라져는지, 휘날리는 눈발 속에 출발한다는 게 또, 영 내키지가 않았다. 아파트 창을 열어보니, 밖에는 아해들이 나와 탄성을 지르며 눈장난 하느라 야단이다. 눈은 호기롭게 계속 내렸다. 이러다간 부산지방 적설량도 대단할 것 같은 예감이 스쳤다. 반신반의하며 내일(6일) 아침 해운대 바닷가에나 가볼까하며 잠을 청했다.
길가엔 차량 등이 엉금엉금 거북이 형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교통통제를 하는 경찰관을 피해 해운대 조선비치 호텔 옆에 차를 묶어두고, ‘인어상’쪽으로 카메라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연방 '셧터'를 눌렀다.
꼭 그 젊은 시절, 사건기자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 나이(?)에 이런 특종(?)을 만나다니...‘심장이 뛴다’ .
조금 오르니, 온 몸에 땀이 흐르면서 숨이 막혀왔다. 그러기를 20여분 ‘광안대교’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원한 정경이다!' 다시 10여분, 포인트라는 돌바위까지 허덕이며 다달았다. “정말 장관이었다”. 흔적을 남기며 오르는 기분, 힘들었지만 정말 상쾌했다. 더구나 아무도 오르지 않은 눈 덮힌 이 장산에 카메라를 갖고 우뚝 서 있는 내자신이 말 그대로 참 좋았다. 이렇게 많은 단색의 하얀 눈이 부산을 도배한 것을 본 것도 육십 평생 처음이다.
산에 올라보니, 기온이 상승하면서 나무에 쌓인 눈은 많이 녹아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100년만에 눈으로 그려진 부산의 전경을 찍는다는 것에 그 의미를 두기로 하고 셧터를 눌렀다. 내가 어릴적 놀던 영도는 더한 아름다웠다. 영도 다리며 봉래산이랑 함지골도 시야에 들어왔다. 정겨운 모습이었다.
먼 훗날 이 사진은 역사를 기록한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잠시나마 그 옛날 기자정신으로 돌아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어느 페이지를 채운다는 희열을 온몸 가득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