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 보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뜻이 서로 맞기도 하고 뜻이 서로 틀리기도 합니다.
의견이 서로 맞으면 좋아하고 의견이 서로 틀리면
싫어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들이 다 가지고
있는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다툼이 있기 마련입니다.
다투다 보면 일이 커지고 일이 커지다 보면
원한을 사게 되어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은
칼을 칼로 갚는다는 말이나 같습니다.
그러나 칼을 칼로 갚다 보면 둘 다 상처를 입게 되는 법입니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다 보면 원한은 다시 원한이 되어
돌아오게 되어 원한의 깊이는 곱절로 깊어집니다.
그리고 서로 원수가 됩니다.
/노자(老子)에 다음과 같은 지혜가 있습니다.
“원한이 있거든 그것을 원한으로 갚지 말고 덕으로 갚아라.”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은 그칠 줄 모릅니다.
원한이 쌓이면 찾아오는 것은 파멸뿐입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원한을 덕으로 갚으면 더 이상 원한이
쌓이지 않는 법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덕보다 더 강력(强力)한 것은 없습니다.
덕은 못된 나를 지게 합니다. 이것을 강(强)이라고 합니다.
강은 내가 나를 다스리는 힘입니다.
덕은 못된 상대를 지게 합니다. 이것을 역(力)이라고 합니다.
역은 내가 남을 다스리는 힘입니다.
이처럼 덕은 두 갈래의 힘을 줍니다.
못된 나를 지게 하면 좋은 내가 됩니다.
원한을 품으면 못된 것이고 원한을 풀면 좋은 것입니다.
덕은 크고 위대합니다.
천지를 닮으려고 하는 마음이 곧 사람이 덕인 까닭입니다.
오해나 앙갚음, 미움 등은 원한의 요소들입니다.
이해나 용서, 사랑 등은 덕의 요소들입니다.
오해하고 있다면 이해하려고
하여야 합니다. 복수를 노리고 있다면 용서하려고
하여야 합니다.
미워하고 있다면 사랑하려고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가지면 ‘노자’의 ‘보원이덕(報怨以德)의
이웃이 될 수가 있습니다.
덕(德)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그것이 바로 덕입니다. 덕이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 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크다는 것은 작은 마음을 용서할 줄 알고
작은 마음을 어루만져줄 줄 아는 것입니다.
어미개가 강아지를 귀여워하고 어미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모이를 줍는 모습을 보십시요,
그것은 바로 덕을 눈으로 보는 경우와 같습니다.
혹시 기분 나쁜 일이 있거나 속상하는 일이 있을 때
거기에 매달려 애를 태우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삭이고
이해하며 넘겨주는 아량을 보이면 그게 바로 덕을 갖춘
마음씨인 것입니다.
이러한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는 노자의 말씀을
교훈으로 삼아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 일을 가지고
시비를 걸지 말고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쪽으로
길을 잡으면 나는 스스로 커지고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뜻이 서로 맞기도 하고 뜻이 서로 틀리기도 합니다.
의견이 서로 맞으면 좋아하고 의견이 서로 틀리면
싫어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들이 다 가지고
있는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다툼이 있기 마련입니다.
다투다 보면 일이 커지고 일이 커지다 보면
원한을 사게 되어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은
칼을 칼로 갚는다는 말이나 같습니다.
그러나 칼을 칼로 갚다 보면 둘 다 상처를 입게 되는 법입니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다 보면 원한은 다시 원한이 되어
돌아오게 되어 원한의 깊이는 곱절로 깊어집니다.
그리고 서로 원수가 됩니다.
/노자(老子)에 다음과 같은 지혜가 있습니다.
“원한이 있거든 그것을 원한으로 갚지 말고 덕으로 갚아라.”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은 그칠 줄 모릅니다.
원한이 쌓이면 찾아오는 것은 파멸뿐입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원한을 덕으로 갚으면 더 이상 원한이
쌓이지 않는 법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덕보다 더 강력(强力)한 것은 없습니다.
덕은 못된 나를 지게 합니다. 이것을 강(强)이라고 합니다.
강은 내가 나를 다스리는 힘입니다.
덕은 못된 상대를 지게 합니다. 이것을 역(力)이라고 합니다.
역은 내가 남을 다스리는 힘입니다.
이처럼 덕은 두 갈래의 힘을 줍니다.
못된 나를 지게 하면 좋은 내가 됩니다.
원한을 품으면 못된 것이고 원한을 풀면 좋은 것입니다.
덕은 크고 위대합니다.
천지를 닮으려고 하는 마음이 곧 사람이 덕인 까닭입니다.
오해나 앙갚음, 미움 등은 원한의 요소들입니다.
이해나 용서, 사랑 등은 덕의 요소들입니다.
오해하고 있다면 이해하려고
하여야 합니다. 복수를 노리고 있다면 용서하려고
하여야 합니다.
미워하고 있다면 사랑하려고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가지면 ‘노자’의 ‘보원이덕(報怨以德)의
이웃이 될 수가 있습니다.
덕(德)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그것이 바로 덕입니다. 덕이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 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크다는 것은 작은 마음을 용서할 줄 알고
작은 마음을 어루만져줄 줄 아는 것입니다.
어미개가 강아지를 귀여워하고 어미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모이를 줍는 모습을 보십시요,
그것은 바로 덕을 눈으로 보는 경우와 같습니다.
혹시 기분 나쁜 일이 있거나 속상하는 일이 있을 때
거기에 매달려 애를 태우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삭이고
이해하며 넘겨주는 아량을 보이면 그게 바로 덕을 갖춘
마음씨인 것입니다.
이러한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는 노자의 말씀을
교훈으로 삼아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 일을 가지고
시비를 걸지 말고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쪽으로
길을 잡으면 나는 스스로 커지고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15일부터 6박7일간 백두산을 갑니다.
나이 들면서 마지막 여행일 것 같습니다.
서 너번 다녀왔지만, 그때는 취재차 동행이였고,
이번은 백두산 일대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진을 찍을지는 아직 모릅니다.
피사체, 카메라의 기술적인 조작, 구도, 빛을 모아
남다른 나만의 사진을 담아 볼려합니다.
위 사진은 2004년6월25일 백두산에서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