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거지의 최후의 자존심
(지난 주에 의해 계속)
(지난 주에 의해 계속)
예컨대 일본의 주간지에 난 것을 하나 인용한다.
어느 멀쩡한 회사의 부장이 낮에는 회사에서 근무를 잘 하고 퇴근한다. 그는 어느 지하도 있는 코인 라커에 간다. 거기서 그는 라커 안에 있는 거지 옷을 꺼낸 후 화장실에서 양복을 벗고 거지 복장으로 갈아 입는다. 그리고 벙거지를 뒤집어 쓴 후 지하도에 앉자 구걸한다. 그리고 밤 10시경 거지로서의 근무가 끝나면 다시 화장실에서 원래의 양복으로 갈아입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기사의 내용인데, 문제는 멀쩡한 회사의 간부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느냐는 거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다.
주간지가 분석하기를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즉 일본사회가 갖고 있는 병리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필자는 일본의 주간지에 보도됐던 회사 부장의 이야기가 사실인가. 그건 혹시 주간지 기자가 만든 작문(소설)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러한 거지를 신쥬쿠 지하도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동경 도심의 번화가 중의 번화가인 신쥬쿠 지하철 역. 지하도 안으로 내려서자 퀴퀴한 찌린내가 났다. 반짝반짝 대리석이 빛나는 지하보도가 있고 지하 상가가 늘어서 있는 지역.
거기에 대략 잡아 3.40명 정도가 라면 상자로 된 판자촌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1인당 주거 면적은 간신히 한사람 누우면 딱 맞을 정도였으나, 지붕까지 라면상자로 덮은 아주 정교한 판자집들이었다.
거기서 수소문 해보니, 대졸자 거지 한사람을 가르쳐 주었다.
필자가 갔을때, 이 인텔리 거지는 취침중이었다. 그를 깨웠다. 금속테 안경을 끼고 시계를 차고 있었고, 머리를 아주 짧게 깎고 있었다. (친하게 대화 할 수 있는 무기가 담배라는 것을 미리 알고 준비했다.) 안경 낀 거지는 없다는데, 인텔리 거지답게 그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답배를 권했다. 순순히 받아 피웠다.
직업의식이 발동해 슬슬 물어보자 자기의 과거를 털어 놓았다. 출신학교는 팔왕자 대학 경제학부, 나이는32세, 거지 경력은 3년, 이름은 하세고지, 팔왕자 대학이 어느 시에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그는 가르쳐 주긴 했으나 밝히지는 말아달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그 대학이 자신이 고향에 있으니 고향과 대학은 밝히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왜 거지가 되었는냐고 물었다. 자신은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체에서 일을 했으나, 근성이 없어 직장을 자주(5,6회) 옮기게 됐고, 또 옮기는 직장마다 적응을 못해 결국은 이 길밖에 없었다는 답변이었다.
처음에는 거지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포장마차 따위에서 허드렛 일을 하기도 했으나 그나마 거품 경제가 깨져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처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일본 경제는 문제가 많다. 일본이 경제대국이고 선진국이면 우리같이 못사는 사람도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현제 일본의 경재정책은 잘못됐다,)
경제학도 다운 대답이었다.
장래 어떻게 살 길 바라는가 하고 물었다.
앞으로의 희망도, 꿈도 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일본에서는 직장을 두 번 이상 옮겨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개 첫 직장에서 평생을 보내거나, 최소한 두 번째 직장에서 일생을 마친다. 그런데 그는 5.6회 정도 직장을 옮겼으니 일본 사회 관점에서 보면 정말로 신용할 수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거나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처지가 이해되었다.
오늘날 일본 남성은 이코노믹 애니멀에서 회사 인간을 지나 회사 동물로 표현되고 있다. 철저한 직업사회, 조직사회의 단면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치의 실수, 한치의 나태가 용납되지 않은 사회가 주식회사 일본이다.
한마디로 겁나는 사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하루에 수십만이 드나드는 신쥬쿠 역에 왜 거지들을 방치해 두고 있는가. 그것은 경제대국 일본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 아닌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이 있다. 하나는 거지에도 인권이 있다는 것이다. 즉 신쥬쿠 경찰서가 강제 철거를 할 수 있으나. 오갈 데 없는 그들을 거기서 내 쫓는 것은 인권 침해,
두 번째는 내쫓을려면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 세 번째는 수용시설이 아무리 잘 만들어 주어도 그들 자신이 적응을 못한다는 것. 그래서 일본의 거지 문제는 대책이 없다.
우에노 거리에서 본 일이다.
일본인 하나가 자신이 먹고 남긴 죠지아 캔 커피를 조심스럽게 쓰레기 통 위에 올려 놓았다. 잠시 후 거지 하나가 음료수 캔을 마시면서 나타났다. 거지는 쓰레기 통 위에 놓여 있는 죠지아 캔 커피를 발견했다. 그는 죠지아 캔을 흔들어 보더니 내용물이 들어있자, 그것을 자신이 막던 음료수 캔에 부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더니, 또 유유히 걸어갔다. 일본인들은 거지들의 그런 습관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남은 음료수 캔을 집어 던지지 않는다. 거지를 위해 조심스럽게 쓰레기통 위에, 벤치위에 놓아둔다. 그러면 거지는 그걸 마시면서 경제대국 일본에서 그나마 살아간다.
끝으로 하나, 특이한 점은 일본 거지는 구걸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는 돈은 사양하지 않지만, 스스로 구걸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일본 거지의 최후의 자존심인가.
어느 멀쩡한 회사의 부장이 낮에는 회사에서 근무를 잘 하고 퇴근한다. 그는 어느 지하도 있는 코인 라커에 간다. 거기서 그는 라커 안에 있는 거지 옷을 꺼낸 후 화장실에서 양복을 벗고 거지 복장으로 갈아 입는다. 그리고 벙거지를 뒤집어 쓴 후 지하도에 앉자 구걸한다. 그리고 밤 10시경 거지로서의 근무가 끝나면 다시 화장실에서 원래의 양복으로 갈아입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기사의 내용인데, 문제는 멀쩡한 회사의 간부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느냐는 거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다.
주간지가 분석하기를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즉 일본사회가 갖고 있는 병리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필자는 일본의 주간지에 보도됐던 회사 부장의 이야기가 사실인가. 그건 혹시 주간지 기자가 만든 작문(소설)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러한 거지를 신쥬쿠 지하도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동경 도심의 번화가 중의 번화가인 신쥬쿠 지하철 역. 지하도 안으로 내려서자 퀴퀴한 찌린내가 났다. 반짝반짝 대리석이 빛나는 지하보도가 있고 지하 상가가 늘어서 있는 지역.
거기에 대략 잡아 3.40명 정도가 라면 상자로 된 판자촌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1인당 주거 면적은 간신히 한사람 누우면 딱 맞을 정도였으나, 지붕까지 라면상자로 덮은 아주 정교한 판자집들이었다.
거기서 수소문 해보니, 대졸자 거지 한사람을 가르쳐 주었다.
필자가 갔을때, 이 인텔리 거지는 취침중이었다. 그를 깨웠다. 금속테 안경을 끼고 시계를 차고 있었고, 머리를 아주 짧게 깎고 있었다. (친하게 대화 할 수 있는 무기가 담배라는 것을 미리 알고 준비했다.) 안경 낀 거지는 없다는데, 인텔리 거지답게 그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답배를 권했다. 순순히 받아 피웠다.
직업의식이 발동해 슬슬 물어보자 자기의 과거를 털어 놓았다. 출신학교는 팔왕자 대학 경제학부, 나이는32세, 거지 경력은 3년, 이름은 하세고지, 팔왕자 대학이 어느 시에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그는 가르쳐 주긴 했으나 밝히지는 말아달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그 대학이 자신이 고향에 있으니 고향과 대학은 밝히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왜 거지가 되었는냐고 물었다. 자신은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체에서 일을 했으나, 근성이 없어 직장을 자주(5,6회) 옮기게 됐고, 또 옮기는 직장마다 적응을 못해 결국은 이 길밖에 없었다는 답변이었다.
처음에는 거지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포장마차 따위에서 허드렛 일을 하기도 했으나 그나마 거품 경제가 깨져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처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일본 경제는 문제가 많다. 일본이 경제대국이고 선진국이면 우리같이 못사는 사람도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현제 일본의 경재정책은 잘못됐다,)
경제학도 다운 대답이었다.
장래 어떻게 살 길 바라는가 하고 물었다.
앞으로의 희망도, 꿈도 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일본에서는 직장을 두 번 이상 옮겨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개 첫 직장에서 평생을 보내거나, 최소한 두 번째 직장에서 일생을 마친다. 그런데 그는 5.6회 정도 직장을 옮겼으니 일본 사회 관점에서 보면 정말로 신용할 수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거나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처지가 이해되었다.
오늘날 일본 남성은 이코노믹 애니멀에서 회사 인간을 지나 회사 동물로 표현되고 있다. 철저한 직업사회, 조직사회의 단면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치의 실수, 한치의 나태가 용납되지 않은 사회가 주식회사 일본이다.
한마디로 겁나는 사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하루에 수십만이 드나드는 신쥬쿠 역에 왜 거지들을 방치해 두고 있는가. 그것은 경제대국 일본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 아닌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이 있다. 하나는 거지에도 인권이 있다는 것이다. 즉 신쥬쿠 경찰서가 강제 철거를 할 수 있으나. 오갈 데 없는 그들을 거기서 내 쫓는 것은 인권 침해,
두 번째는 내쫓을려면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 세 번째는 수용시설이 아무리 잘 만들어 주어도 그들 자신이 적응을 못한다는 것. 그래서 일본의 거지 문제는 대책이 없다.
우에노 거리에서 본 일이다.
일본인 하나가 자신이 먹고 남긴 죠지아 캔 커피를 조심스럽게 쓰레기 통 위에 올려 놓았다. 잠시 후 거지 하나가 음료수 캔을 마시면서 나타났다. 거지는 쓰레기 통 위에 놓여 있는 죠지아 캔 커피를 발견했다. 그는 죠지아 캔을 흔들어 보더니 내용물이 들어있자, 그것을 자신이 막던 음료수 캔에 부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더니, 또 유유히 걸어갔다. 일본인들은 거지들의 그런 습관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남은 음료수 캔을 집어 던지지 않는다. 거지를 위해 조심스럽게 쓰레기통 위에, 벤치위에 놓아둔다. 그러면 거지는 그걸 마시면서 경제대국 일본에서 그나마 살아간다.
끝으로 하나, 특이한 점은 일본 거지는 구걸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는 돈은 사양하지 않지만, 스스로 구걸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일본 거지의 최후의 자존심인가.
@ 사진은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 아사쿠사에 있는 ‘센소지’이다. 교포들은 이 절을 우리 절이라 한다. 지난해 이 절의 유래에 대해 쓴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