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데리고 한라산에/ 오르며 ‘저 백록담까지 올라도 그만, 안 올라도 그만/ 가는데 까지 그냥 가다가/ 아무데서나 퍼져 앉아버려도 그만…….
이상하게도 ‘한라산’하면 온몸이 되살아나고 어지러워 자빠진 몸이 새롭게 눈 떠서 일어난다.
한라산. 생각만 하여도 가슴 벅차다. ‘사람들은 20대에 산이 좋아, 암벽을 타고 그만두는데 나는 60이 넘어서 한라산 백록담 암벽을 오른다해서 미친 놈 취급받았다. 백록담, 직벽 약 50여m의 높이는 공포감, 무서움, 팽팽한 긴장감, 그러나 바위의 미세한 틈에 손톱 하나만 걸치고, 손톱의 힘으로 어려운 피치를 돌아갈 때 쾌감이 증가되었다. 이렇듯 백록담을 몸으로 조우하면서, 현실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젊은 시절의 급한 성격과 흥분이 가라앉고 참을성과 포용력이 생겨나는 듯 했다.
커피 한잔 마시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쌓여가는 생의 피로를 잠시 멈추고, 한라산을 다시 걷고 싶다. 정말 힘든 산행이였다. 더구나 세월 앞엔 장사가 없다는 말이 그렇게 실감나는 것도 처음이다. 그저 말로만 듣고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는 세월을 못 속인다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깊이 생각게 한 산행이다.
사진 여행을 떠날 땐 매번 그 설렘부터 시작된다. 이것저것 준비를 하면서 들를 곳을 헤아린다. 대개의 경우 목적지만을 염두에 두고 그곳만을 향해 허겁지겁 일로매진 하느라 그곳에 이르는 과정은 소홀히 여기는 수가 많았다. 그러나 좋은 사진 여행은 목적지보다도 그 과정과 도중에서 보다 귀한 것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이것은 여행뿐 아니라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물으면서 탐구하는 그 과정에서 보다 값진 인생을 이룰 수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 안에서 고마움과 기쁨을 찾아내어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사진여행은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가 있는 기간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차분히 음미하면서 현재의 삶을 알차게 가꾸어 나감으로써 사진여행의 의미는 여물어 간다.
사진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도 누구와 함께 가느냐도 훨씬 중요하다. 누구나 겪어서 알고 있겠지만, 취향과 기질이 같지 않은 동반자와 길을 함께 하게 되면, 모처럼 떠나온 나그네길인데도 날개를 펴 보지 못한 채 무거운 갈등의 짐만 잔뜩 짊어지고 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옛 성현도 말씀하셨듯이 ‘차라리 혼자서 갈 것이지 어리석은 자와 길벗이 되지 말라’ 고 가르친 것이다. 사진여행은 한때로 끝나지만 한 생애의 동반자인 그 “짝”을 잘못 만나면 평생을 두고 무거운 멍에를 져야 한다. 이와 같은 깨우침은 내 자신도 한때의 나그네길에서 터득한 교훈이다.
그러나 이번 사진여행은 힘든 과정이었지만. 아- 인생살이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느낌을 가져다 준 즐거운 산행이었다. 지난 6일, 출발 2박 3일간 일정속에서 운이 좋아 좋은 피사체를 만나게 된 것과 이번 산행에 많은 도움을 준 지인들, 마음씨 고운 동행인들,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8일 귀부 몸살을 앓아 오늘이야 산행일기를 정리한다. 소문에 소문을 듣고 언제 사진이 올라오나 하면서 기대 속에 저의 홈피를 찾아 준 들께 고마움과 죄송한 마음을 드린다. 끝으로 정리를 하면, 다리 아프고 숨차서 발걸음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면 속세는 저만치 멀어져 가고 훈풍 살랑거리는 한라산 바람만 가슴으로, 가슴으로 달려들었다.
한라산의 넓은 품에 안긴다!
한라산은 해발 1,950m로 예부터 조선의 3대 명산이라 불려온 바 그 대로 외모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로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유형, 무형의 보물과 이야기를 간직한 채 오늘도 침묵으로 버티어 있다.
6일, 창공을 날던 비행기가 제주해협을 건너면서 기내 창을 통해 먼저 눈으로 들어오는 것은, 눈을 지그시 감고 바다 한가운데 나지막하면서도 편안하게 앉아있는 한라산의 그 여유로운 자태이다. 비행기가 섬에 가까워지고 좀더 고도를 낮추어 가면 반대로 산은 점점 높아 보이는데, 그 산기슭 검은 갯가에 하얗게 부셔지는 파도가 더욱 청신하게 사람들 눈을 씻어 준다.
6일 아침 10시경, 한라산 산행코스로 가깝다는 영실로 산을 오르기 시작, 산을 오르면서 잠시 멈추고 아래로 들여다보면 사람세상과 전혀 다른 세계를 맞본다. 연 분홍빛보다 더 붉은 철쭉과 구상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구름에 취한 동행인은 ‘하늘-구름- 철쭉-’ 할말이 없다고 노래한다.망망한 나무숲의 바다를 눈앞에 두고 그나마 펼쳐진 초원, 그것을 지나 천진한 아이들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듯 올망졸망한 오름들과 마을들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다시 몸을 돌려 영실 쪽을 바라보면, 끝없이 펼쳐진 돌밭의 그 불가해한 정경에 숙연해진다.
한라산의 신비. 그 간단하면서 끝간데 없음에 정신을 차리고 발밑을 내려다보면, 냉랭한 산바람에 목을 움츠리고 누운 향나무가 수줍게 앉아있다. 그 너머 의연하게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고사목의 섬뜩한 자태가 또한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그 말라 버린 수목의 잔해에서 산의 오묘한 역사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서 백년 죽어 백년을 산다는 이 고사목은 못다 산 삶을 죽어서 다시 펼쳐 놓고 있는 것이다.
한참 돌밭을 지나 나무다리로 이어 놓은 다리를 밟는다. 온 산이 연분홍 물든 철쭉이 손짓한다. 벌써 일행은 줄달음질 쳐 명소를 찾아 헤어지고, 동행인은 카메라 앵글에 구름을 담느라 바쁜 것 같다. 통제 선을 넘어 윗세오름속 비경으로 빠져 들어갔다.
한참 헤매다 보니, 등산화가 운명을 다해 배를 갈라놓았다. 허겁지겁 끈으로 얽어 메고, 일행을 찾았다. 저 멀리 '오름약수'를 지난 곳에서 피사체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촬영에 열심이다.
등산화를 끌고 겨우 다다라 점심대용인 김밥을 내 먹었다. 제주에 사는 사진인들이 5-6명 모여 백록담을 지나는 구름을 잡느라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사진을 취미로 한다는 데에 동화된 모습들이 참 좋아 보인다. 기다리는 구름은 속을 태우며 백록담에 걸리지 않는다.
한참 지나 우리 일행은 밤자리를 찾아 어슬렁어슬렁 나섰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으로 때운 ‘사발면’, 그 맛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역시 허기져 그런가 보다. 이럭저럭 잠자리를 펼치며, 내일 새벽 3시에 기상, 백록담에 오른다는 계획하에 잠을 청했다. 피곤했지만, 코를 드릉거리는 지인은 없었다. 이리저리 뒹굴며 새우잠을 자고 3시10분경, 산행에 나섰다.
약40여분 자갈길을 걸어 막다른 ‘환상의 서북벽’에 맞섰다. 아직 동녘이 밝아지려면 좀있어야 했다. 10여분 휴식, 나는 불안감이 앞선다. 결국 쳐질 것이 뻔하니 먼서 등정키로 하고, 산을 오른다. 말이 산을 오르는 것이지, 뾰족 솟은 돌 위에 밧줄을 타고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오금이 떨리며 불안감이 겹친다. 밑을 보니 머리가 어지럽고 까마득하다. 해발 약1800고지, 두 줄로 뻗어 내린 밧줄을 틀어쥐고 용을 쓰며 오른다. 별 생각이 다 든다. 저 멀리 제주시가의 새벽이 불빛에 아롱거리며 들어온다. 일행들은 아직 소식이 없다, 한참이나 올라 마지막 코스로 접어드니 백록담 호수가 보인다. 다 왔나 보다. 한숨을 돌려 쉬고, 카메라를 꺼내 한 장을 찍었다. 그때 일행들이 들어선다. "같이 와야지, 위험하지 않아요?"하며 핀잔이다. 그러나 나의 속내를 전할 길 없고, 그저 뒤쳐질까봐 먼저 올라왔다고 변명 아닌 말로 둘러댄다.
백록담은 많은 상처를 입고 있다. 백록담이 사람들의 거친 다리와 내뿜는 독기 때문에 천천히 말라가면서 노쇠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백록담을 빼놓고 한라산을 생각할 수는 없다. 지난 2월 눈보라치는 날 백록담을 오를 계획이었으나, 윗세오름까지만 갔다 포기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백록담’에 집착하는 것일까. 각기 다른 사유가 있겠지만, 듣기론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파르고 등정하기 힘든 곳이 백록담이라 한다. 실제 올라보니 그런 것 같다. 백록담의 길이가 약100여m이고, 넓이가 30정보가 되는데 밑바닥이 약간 비스듬히 되어 있어서 물은 한쪽에 채워져 있다.
물이 없는 곳에는 키 작은 구상나무와 초여름을 노래하고 있는 고사목, 그리고 누운 향나무 등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다. 신비롭다. 동행한 지인은‘ '고사목과 구상나무’를 ‘생과 사’로 표현하며 카메라를 들이 댄다. 그러나 나는 7일 운무에 가려진 백록담을 보며 내 생애 황홀감을 느낀다.
이렇게 한라산 백록담 등정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난코스인 남벽을 내려오면서 끝을 맺었다. 그 다음도 고사목 밭 등 기록할 이야기꺼리가 많치만 대강을 기록 한다. 다음날인 8일 아침9시. 속칭 'Y계곡‘이란 곳을 갔다. 이끼 촬영이 목적. 물이 부족한 탓인지 썩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의 자연환경은 정말로 대단했다. 그만큼 보호가 잘 돼 있는 것이다. 보기 드문 천연자연림에다 숲 소리, 새소리, 물론, 상수도보호구역이라서, 그런지, '아-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며 일행들 모두 환성이다. 몇 컷을 하고 한라산 철쭉여행은 가을 단풍을 기약하며 이만 접기로 한다.
구름이 하늘에 떠도는 여름 한라산은 생동감이 넘친다. 초록, 연두, 노랑 등 그 어느 보석보다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빛을 띤다. 어디선가 노루도 뛰어나와 이리저리 달린다. 노루들도 신이 났나 보다. “꺽, 꺽” 소리도 질러댄다. 새소리도 들린다. 바람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이것이 한라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자연의 교향곡인가.

이상하게도 ‘한라산’하면 온몸이 되살아나고 어지러워 자빠진 몸이 새롭게 눈 떠서 일어난다.
한라산. 생각만 하여도 가슴 벅차다. ‘사람들은 20대에 산이 좋아, 암벽을 타고 그만두는데 나는 60이 넘어서 한라산 백록담 암벽을 오른다해서 미친 놈 취급받았다. 백록담, 직벽 약 50여m의 높이는 공포감, 무서움, 팽팽한 긴장감, 그러나 바위의 미세한 틈에 손톱 하나만 걸치고, 손톱의 힘으로 어려운 피치를 돌아갈 때 쾌감이 증가되었다. 이렇듯 백록담을 몸으로 조우하면서, 현실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젊은 시절의 급한 성격과 흥분이 가라앉고 참을성과 포용력이 생겨나는 듯 했다.
커피 한잔 마시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쌓여가는 생의 피로를 잠시 멈추고, 한라산을 다시 걷고 싶다. 정말 힘든 산행이였다. 더구나 세월 앞엔 장사가 없다는 말이 그렇게 실감나는 것도 처음이다. 그저 말로만 듣고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는 세월을 못 속인다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깊이 생각게 한 산행이다.
사진 여행을 떠날 땐 매번 그 설렘부터 시작된다. 이것저것 준비를 하면서 들를 곳을 헤아린다. 대개의 경우 목적지만을 염두에 두고 그곳만을 향해 허겁지겁 일로매진 하느라 그곳에 이르는 과정은 소홀히 여기는 수가 많았다. 그러나 좋은 사진 여행은 목적지보다도 그 과정과 도중에서 보다 귀한 것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이것은 여행뿐 아니라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물으면서 탐구하는 그 과정에서 보다 값진 인생을 이룰 수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 안에서 고마움과 기쁨을 찾아내어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사진여행은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가 있는 기간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차분히 음미하면서 현재의 삶을 알차게 가꾸어 나감으로써 사진여행의 의미는 여물어 간다.
사진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도 누구와 함께 가느냐도 훨씬 중요하다. 누구나 겪어서 알고 있겠지만, 취향과 기질이 같지 않은 동반자와 길을 함께 하게 되면, 모처럼 떠나온 나그네길인데도 날개를 펴 보지 못한 채 무거운 갈등의 짐만 잔뜩 짊어지고 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옛 성현도 말씀하셨듯이 ‘차라리 혼자서 갈 것이지 어리석은 자와 길벗이 되지 말라’ 고 가르친 것이다. 사진여행은 한때로 끝나지만 한 생애의 동반자인 그 “짝”을 잘못 만나면 평생을 두고 무거운 멍에를 져야 한다. 이와 같은 깨우침은 내 자신도 한때의 나그네길에서 터득한 교훈이다.
그러나 이번 사진여행은 힘든 과정이었지만. 아- 인생살이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느낌을 가져다 준 즐거운 산행이었다. 지난 6일, 출발 2박 3일간 일정속에서 운이 좋아 좋은 피사체를 만나게 된 것과 이번 산행에 많은 도움을 준 지인들, 마음씨 고운 동행인들,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8일 귀부 몸살을 앓아 오늘이야 산행일기를 정리한다. 소문에 소문을 듣고 언제 사진이 올라오나 하면서 기대 속에 저의 홈피를 찾아 준 들께 고마움과 죄송한 마음을 드린다. 끝으로 정리를 하면, 다리 아프고 숨차서 발걸음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면 속세는 저만치 멀어져 가고 훈풍 살랑거리는 한라산 바람만 가슴으로, 가슴으로 달려들었다.
한라산의 넓은 품에 안긴다!
한라산은 해발 1,950m로 예부터 조선의 3대 명산이라 불려온 바 그 대로 외모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로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유형, 무형의 보물과 이야기를 간직한 채 오늘도 침묵으로 버티어 있다.
6일, 창공을 날던 비행기가 제주해협을 건너면서 기내 창을 통해 먼저 눈으로 들어오는 것은, 눈을 지그시 감고 바다 한가운데 나지막하면서도 편안하게 앉아있는 한라산의 그 여유로운 자태이다. 비행기가 섬에 가까워지고 좀더 고도를 낮추어 가면 반대로 산은 점점 높아 보이는데, 그 산기슭 검은 갯가에 하얗게 부셔지는 파도가 더욱 청신하게 사람들 눈을 씻어 준다.
6일 아침 10시경, 한라산 산행코스로 가깝다는 영실로 산을 오르기 시작, 산을 오르면서 잠시 멈추고 아래로 들여다보면 사람세상과 전혀 다른 세계를 맞본다. 연 분홍빛보다 더 붉은 철쭉과 구상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구름에 취한 동행인은 ‘하늘-구름- 철쭉-’ 할말이 없다고 노래한다.망망한 나무숲의 바다를 눈앞에 두고 그나마 펼쳐진 초원, 그것을 지나 천진한 아이들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듯 올망졸망한 오름들과 마을들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다시 몸을 돌려 영실 쪽을 바라보면, 끝없이 펼쳐진 돌밭의 그 불가해한 정경에 숙연해진다.
한라산의 신비. 그 간단하면서 끝간데 없음에 정신을 차리고 발밑을 내려다보면, 냉랭한 산바람에 목을 움츠리고 누운 향나무가 수줍게 앉아있다. 그 너머 의연하게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고사목의 섬뜩한 자태가 또한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그 말라 버린 수목의 잔해에서 산의 오묘한 역사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서 백년 죽어 백년을 산다는 이 고사목은 못다 산 삶을 죽어서 다시 펼쳐 놓고 있는 것이다.
한참 돌밭을 지나 나무다리로 이어 놓은 다리를 밟는다. 온 산이 연분홍 물든 철쭉이 손짓한다. 벌써 일행은 줄달음질 쳐 명소를 찾아 헤어지고, 동행인은 카메라 앵글에 구름을 담느라 바쁜 것 같다. 통제 선을 넘어 윗세오름속 비경으로 빠져 들어갔다.
한참 헤매다 보니, 등산화가 운명을 다해 배를 갈라놓았다. 허겁지겁 끈으로 얽어 메고, 일행을 찾았다. 저 멀리 '오름약수'를 지난 곳에서 피사체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촬영에 열심이다.
등산화를 끌고 겨우 다다라 점심대용인 김밥을 내 먹었다. 제주에 사는 사진인들이 5-6명 모여 백록담을 지나는 구름을 잡느라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사진을 취미로 한다는 데에 동화된 모습들이 참 좋아 보인다. 기다리는 구름은 속을 태우며 백록담에 걸리지 않는다.
한참 지나 우리 일행은 밤자리를 찾아 어슬렁어슬렁 나섰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으로 때운 ‘사발면’, 그 맛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역시 허기져 그런가 보다. 이럭저럭 잠자리를 펼치며, 내일 새벽 3시에 기상, 백록담에 오른다는 계획하에 잠을 청했다. 피곤했지만, 코를 드릉거리는 지인은 없었다. 이리저리 뒹굴며 새우잠을 자고 3시10분경, 산행에 나섰다.
약40여분 자갈길을 걸어 막다른 ‘환상의 서북벽’에 맞섰다. 아직 동녘이 밝아지려면 좀있어야 했다. 10여분 휴식, 나는 불안감이 앞선다. 결국 쳐질 것이 뻔하니 먼서 등정키로 하고, 산을 오른다. 말이 산을 오르는 것이지, 뾰족 솟은 돌 위에 밧줄을 타고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오금이 떨리며 불안감이 겹친다. 밑을 보니 머리가 어지럽고 까마득하다. 해발 약1800고지, 두 줄로 뻗어 내린 밧줄을 틀어쥐고 용을 쓰며 오른다. 별 생각이 다 든다. 저 멀리 제주시가의 새벽이 불빛에 아롱거리며 들어온다. 일행들은 아직 소식이 없다, 한참이나 올라 마지막 코스로 접어드니 백록담 호수가 보인다. 다 왔나 보다. 한숨을 돌려 쉬고, 카메라를 꺼내 한 장을 찍었다. 그때 일행들이 들어선다. "같이 와야지, 위험하지 않아요?"하며 핀잔이다. 그러나 나의 속내를 전할 길 없고, 그저 뒤쳐질까봐 먼저 올라왔다고 변명 아닌 말로 둘러댄다.
백록담은 많은 상처를 입고 있다. 백록담이 사람들의 거친 다리와 내뿜는 독기 때문에 천천히 말라가면서 노쇠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백록담을 빼놓고 한라산을 생각할 수는 없다. 지난 2월 눈보라치는 날 백록담을 오를 계획이었으나, 윗세오름까지만 갔다 포기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백록담’에 집착하는 것일까. 각기 다른 사유가 있겠지만, 듣기론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파르고 등정하기 힘든 곳이 백록담이라 한다. 실제 올라보니 그런 것 같다. 백록담의 길이가 약100여m이고, 넓이가 30정보가 되는데 밑바닥이 약간 비스듬히 되어 있어서 물은 한쪽에 채워져 있다.
물이 없는 곳에는 키 작은 구상나무와 초여름을 노래하고 있는 고사목, 그리고 누운 향나무 등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다. 신비롭다. 동행한 지인은‘ '고사목과 구상나무’를 ‘생과 사’로 표현하며 카메라를 들이 댄다. 그러나 나는 7일 운무에 가려진 백록담을 보며 내 생애 황홀감을 느낀다.
이렇게 한라산 백록담 등정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난코스인 남벽을 내려오면서 끝을 맺었다. 그 다음도 고사목 밭 등 기록할 이야기꺼리가 많치만 대강을 기록 한다. 다음날인 8일 아침9시. 속칭 'Y계곡‘이란 곳을 갔다. 이끼 촬영이 목적. 물이 부족한 탓인지 썩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의 자연환경은 정말로 대단했다. 그만큼 보호가 잘 돼 있는 것이다. 보기 드문 천연자연림에다 숲 소리, 새소리, 물론, 상수도보호구역이라서, 그런지, '아-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며 일행들 모두 환성이다. 몇 컷을 하고 한라산 철쭉여행은 가을 단풍을 기약하며 이만 접기로 한다.
구름이 하늘에 떠도는 여름 한라산은 생동감이 넘친다. 초록, 연두, 노랑 등 그 어느 보석보다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빛을 띤다. 어디선가 노루도 뛰어나와 이리저리 달린다. 노루들도 신이 났나 보다. “꺽, 꺽” 소리도 질러댄다. 새소리도 들린다. 바람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이것이 한라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자연의 교향곡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