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 Think

'화두'는 단풍이였다.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지나간 12개월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 한해 동안에 내가 이루어 놓은 일, 고통을 겪었던 일, 실천에 옮겼던 일, 혹은 소홀히 했던 일들이 모두 생각난다. 마치 사람이 죽은 뒤에 비로소 그 사람의 가치를 아는 것과 같이 1년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인간은 자기성찰과 관조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신이나 주위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총 또는 자신도 모르게 잘못했던 실수를 발견할 수가 없다. 때문에 우리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그야말로 기쁜 마음으로 조용한 모임을 통해 1년동안의 생활을 조용히 회상해 본 뒤 기뻤던 일, 고마웠던 일, 또는 힘들었던 일들을 서로 돌아보면서 기쁜 일에는 진정한 감사를, 부족했던 일들은 정직한 자기반성을 통해 다시는 같은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이 송년회의 바른 길이 아닐까. 한마디로 ‘충전의 시간’으로 보내는 셈이다.

어느 철학자는 제야를 보내며 이렇게 반성했었다. 한해의 3분의 1은 그래도 성취에 가까웠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다만 마음뿐이었으며, 마지막 3분의 1은 후회뿐이라고. 나같이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겐 그만한 일도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은 그저 타성에 따라서 어정쩡하게 세월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일화가 있다. 중국의 유명한 문학가 임어당(林語堂)의 저서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사나이가 지옥에 떨어졌다가 염라대왕을 만났다.

“대왕께서 다시 인간세상으로 보내주신다고 한 들 제가 희망하는 조건이 아니면 저는 다시 가지 않겠습니다”. 대왕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 조건이라니 도대체 뭐냐?”. 그 사나이는 수다스럽게 대답했다. “이번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고관대작의 아들로 태어나거나 또한 장차 고관대작이 될 자의 아버지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싫습니다. 집 주위에는 일만 정보의 땅과 금붕어가 있는 연못과 모든 종류의 과일과 선량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름다운 첩이 없다면 싫습니다. 천장까지 황금과 진주로 장식한 많은 방과 곡식이 가득한 여러 곳간과 황금이 꽉 찬 가방도 없다면 싫습니다. 그리고 저는 왕후장상이 되어서 명예와 번영을 마음껏 누리고 100살까지 장수하지 않으면 싫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천천히 대답했다. “사회에 그런 인간이 있다면 이 몸이 다시 태어나서 가겠노라. 너 같은 것을 보낼 줄 아느냐?”고.

행복은 과수원의 과일들처럼 어디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하나의 익살스런 교훈이다. 행복이란 황금이나 쾌락만으로 넘쳐있는 것은 아니다. 절세의 미인으로 당대의 영웅호걸들만을 상대하던 ‘클레오파트라’는 독사에 물려 죽고 말았다. 천하를 흔들던 중국의 진시황도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들에겐 영원한 만족도 변치 않는 행복도 없었다. 인생은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듯 행복을 딸 수도 없다. 스스로 노력하고 스스로 힘들여 과수를 가꾸어 오랜 시일이 지난 뒤에 행복이라는 과일을 거둬들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젊다. 우리는 건강하다.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다만 그 모든 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조화시키느냐가 문제다. 젊음과 건강과 가능성을 합쳐 커다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지’가 필요하다. 송구영신에 즈음해 해보겠다는 신념과 기필코 성취시키겠다는 투지와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지금도 늦진 않았다. 최선을 다하는 곳에 결코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