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黃梅山)을 찾아 나선 것은 지난13일 새벽2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그곳을 잘 알고 있는 지인과 나들이한 것이다. 목적지는 보성녹차밭이였다.
뒷좌석에 앉아 눈을 감고...생각에 잠겨있을 때.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도로를 깔려간다. 며 ‘자- 황매산 운해가 기가 막히겠네요? 자 황매산으로 갑시다. 그러고 나서 보성 가죠.’
묵언의 동의……. 시속150여K의 승용차는 내달렸다. 가까스로 4시40분경 황매산 입구 ‘영화를 찍은 곳’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황매산은 경남 합천군과 산청군의 차황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1,108m 소백산맥 중에 솟아 있는 고봉으로 산꼭대기는 고위평탄면을 이루고, 능선은 남북으로 뻗어있다. 북쪽비탈면에서 황강의 지류, 동쪽 비탈면에서 사정천(射亭川)이 발원한다. 그래서 가끔 운해가 떠 올라,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신비한 자연을 연출한다.
5시경 동쪽 하늘이 밝아온다. 이것저것 챙겨 산을 오른다. 그렇게 높지도 않고 평탄한 길엔 산행이 쉽도록 층계를 나무로 깔아 놓았다. 자연과 친숙하게 한 방편인 것 같다. 한 30여분 올라 해발 800고지에 다다랐다. 사방으로 운해가 밀려드나 그렇게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 황매산은 형태가 매화나무와 같이 꾸불꾸불 황매와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다고 한다. 합천쪽은 큰 목장이 형성되어 있다가 문을 닫고 지금은 그 대로 방치된 것 같다. 그러나 이 산청쪽은 철쭉을 산허리에 심고 영화촬영장으로 사용후, 지자체가 널리 홍보, 5월에 철쭉제 행사를 하면서 널리 알려진 명소라고 보아진다.
아침 10시경 도착한 보성차밭, 두말할 것 없이, 전국적인 명소다. 차밭을 찾는 관광객은 인산인해였고, 지난해에 비해 차밭도 산지를 많이 개간해 조성되었다. 차를 따는 아낙들도 인심이 좋아, 카메라를 들이대도 무반응이다. 할일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자기일에 대한 정직성, 성철스님이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법어가 떠오른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일해야 먹고 산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에 다른 일체는 필요가 없다. 는 태도이다. 계승하야 할 농심(農心) 이다. 그렇게 나는 하루를 새벽2시부터 저녁8시까지 16시간의 강행을 한 것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내가 산에 가는 것은 산에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을 산처럼 살기 위해서다.” 누군가 산에 가는 이유를 물어왔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실제로 나는 산행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운다. 탐욕을 버리고 살아라는 산의 교훈을 배우고, 남을 배려하면 생활하라는 가르침도 받는다. 이렇듯 인간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만 갖추고 있다면 산은 수만 권의 책이 되기 도하고, 옛 성현들의 주옥같은 말씀이 되기도 한다.
지식정보사회로 통칭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온다. 과학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생활에 편리한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풍족해지고, 그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나 지식, 정보의 양만큼 인간의 삶은 행복한가? 이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비록 가난했지만 옛날이 더 좋았다고 말한다. 그만큼 현대인의 마음은 풍요롭지 못하고 하루하루의 생활은 각박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즐기며 자신을 정화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향은 우리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깊은 산 속 옹달샘’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향은 근본적으로는 자연(自然)이다. 현대인의 고통과 스트레스는 그 삶이 자연과 멀어지면서 이미 예고되었는지 모른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이면 열매 맺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닐까 싶다.
나는 주말이면 자연을 찾는다. 고요한 자연의 길을 걸으면서, 또 깊은 산속의 청정한 암자를 만나면서, 아름드리나무들의 상쾌함을 맛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찾는다. 이 시간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연을 찾으면서 받은 감흥이 커갈수록 이에 대한 기록과 해야겠다는 의무감도 또한 커갔다. 이렇게 하여 카메라로 자연을 닮고 이 ‘홈피’도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이번도 사진 속에 보성차밭의 찻잎이 싱그러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언가를 담았고, 황매산의 절경도 한 폭의 그림으로 떠오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려 카메라에 한 컷씩 담았다. 그리고 실제로 보성 차와 황매산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사실적인 묘사에 중심을 두었다. 무엇보다 보성차밭에서는 차를 만드는 사람을 만나 유통과정을 세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장엄하고 빼어난 자연 앞에서 저절로 머리 숙여지는 숙연한 자세를 갖게 되고, 그 속에 동화되며 도시의 온갖 오염물질로 찌들어가고 있던 자신의 정화되고 구원을 받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황매산에 오르면서 인생의 뒤안길을 생각하며, 거대한 자연의 품속에서 무욕(無慾)의 철학을 배우고, 나의 일상으로부터 비로소 참된 인생길을 찾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갖게 되었다.
모두들 허세와 오만과 증오와 우매함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지쳐 있는 우리들에게 자연은 아마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인생의 반려가 되고 안내가 된다. 내 인생 다할 날까지, 힘들어도 그간 거침없이 토로 했던 삶들을 자연에 회귀하는 노력을 가일층 다해야 할 것 같다. 오는 6월경도 한라산‘백록담’에 오를 계획을 짜놓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체력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꼭 갈 것이다. 흰머리를 휘날리며 또 한라산 정상에 오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즐거워진다.
이 주일엔 꼭 정비석의 ‘산정무한(山情無限)’이라는 산행기를 구해 읽을 것이다. 금강산에 대한 서경묘사(敍景描寫)가 매끄러운 문체를 통해서 문학적 성과를 다룬 작품이다. 정비석은 사실적인 정직성이 확고해 예리한 관찰력과 답사의 성실성을 갖고 과장이나 애매모호한 상상력을 가하지 않고 서술해 나가려는 노력이 그 같은 ‘산정무한’을 낳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기에는 산행 중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와 이야기기의 지문이 삽입되면서 훨씬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이렇게 자연만의 묘사로서가 아니라 거대한 자연의 품에 안긴 작은 인간의 만남까지 짜깁기 형태로 삽입시켜 나간 것은 매우 훌륭한 문학적 기법이었다. 고 나는 나의 ‘삶의 노트’를 뒤져 다시 읽는다. 읽은 년도가 지난 72년 12월이라고 되었으니 참 세월이 무상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 한다. 그러나 남은 나의 인생동안 열심히 정직하게 삶을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게으르지 않고 자연을 찾아 여행을 할 것이다. 소나무와 대화도 하고.....,16일, 새벽1시부터 2시5분에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