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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부모는 자식들에 성가신 존재인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죽음으로 마감된다. 그러나 극의 결말이 비극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죽음은 계절로 치면 겨울에 해당한다. 세익스피어의 이 극은 봄이 시작되는 광경으로 끝난다. 아름다운 남녀의 죽음은, 앙숙인 두 가문의 화해로 꽃 피어나고 있다.

 그러나 세익스피어는, 꽃다운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어른들에 대한 문책도 잊지 않는다. 영주(領主)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집안 어른들을 이렇게 질책한다. “자, 두 집안의 미움에 대해 하늘이 어떤 벌을 내렸는가 보라. 그대들의 기쁨인 자식들을 서로 사랑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서로를 파멸시켰도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이 아니다. 그렇다고 희극도 아니다. 희극이었다면 그들의 결혼식 장면으로 끝났을 것이다. 희극에서는, 어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어떤 반전이 일어나 젊은 남녀는 행복한 가정으로 꾸미게 된다. 이와같이 비극과 희극은 다르지만, 한 가지는 같다. 어른을, 젊은이들이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설정하고 있는 점이다.

  연말, 2010년까지 우리 국민의 건강 수명을 72세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보고, 누군가 말했다. 젊은이의 짐이 더 무거워지게 됐다고. 그럼으로써 세대간의 반감도 더 커질 것이라고. 그러나 알고 보면 늘 있어온 반감이다.

 자식들에게 부모는 늘 성가신 존재다. 그러나 요즘 부모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부모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부모를 성가셔 한다. 옛날의 부모는 권력-혹은 권위-때문에 자식들에게 성가신 존재였다. 오늘날에는 부모가 무능력하여 자식들을 성가시게 한다.

 부모와 자식의 싸움에서 시간은 자녀의 손을 들어준다. 부모가 먼저 늙고 쇠약해지고 죽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시간의 농간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부모의 패배가 확실해질 때 쯤 자녀들은 스스로 부모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