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 Think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정객(政客)은 국민의 마음을 울컥 감동시킬 수 있는 감성적 요소가 풍부해야 한다. JP(김종필). 올해 82세의 노정객 JP가 아니라 40년 전 42세의 패기만만한 혁명아 JP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1968년 5월, 그는 공화당 당의장이었다. 국민복지회 사건이라는 게 터졌다. JP 추종 세력이 2인자 JP를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 후계자로 옹립하려 한다는 역모 사건이었다. 3선 개헌을 암중모색하던 박정희의 역린을 그대로 건드렸다. JP는 당의장 사퇴, 공화당 탈당, 국회의원 사퇴로 정계은퇴. 박정희 세력은 JP를 완벽하게 추방했다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JP가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 앉아 선글라스를 쓴 채 담배를 입에 물고 수채화를 그리는 사진 한 장이 신문에 크게 실리면서 민심의 시장에서는 대세가 뒤바뀌고 있었다. 최대권력자로부터 핍박받는 고독한 로맨티스트.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JP는 화구(畵具)를 들고 경포대, 제주도를 돌며 그림을 그렸다. 선글라스를 쓰고 바둑을 두는 그 유명한 사진도 이때다.

진주에도 갔다. 얼큰하게 취한 JP는 밥집 주인에게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를 묵글씨로 써주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박정희는 JP를 향해 쏠리는 민심의 동정에 애를 태웠다. 권력의 세계에서 국민의 동정심에 당할 장수는 없다. 칼보다, 총보다 파워풀하다. 박정희는 결국 JP를 복귀시킬 수밖에. 정객은 권력자의 탄압과 핍박을 먹으며 성장한다. 핍박 정치의 미학(美學)이라고나 할까.

박근혜의 공천 반발을 핍박 정치 프레임으로 분석하면 흥미롭다. “이런 술수까지… 분노한다. 참을 수 없다. 말도 안되고 기가 막힌 공천”이라고 퍼붓다가 대통령 이명박과의 신뢰관계는 “깨지는 것”이라고 아예 선언해버렸다. 담력이 보통을 넘는다.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박경리 소설 ‘토지’의 서희처럼 또박또박 단문성(短文性) 어투로 폐부에 사무친 감정을 뿜어내며 뭐라도 저지를 듯한 결기도. 박근혜는 계파 수족들이 공천에서 더 떨어져 나갈수록 정치적 파워 차원에서는 손해 볼 게 없다. 핍박받는 이미지는 진할수록 호소력이 크기 때문에. 이명박계(系)가 박근혜에게 남는 장사를 시키고 있다. 이명박계가 아직도 이런 정치와 민심의 미묘함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