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은 수줍음이 많은지 한라산에 올랐지만 안개가 서리고 흐르는 구름이 쌓여 백록담을 볼 수 없었다. ‘한라산의 날씨는 신만의 비밀’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는다.
2월15일, 나는 열 번째로 한라산에 올랐다. 서쪽 길인 영실코스는 며칠전부터 눈이 쌓여, 겨우 초입까지 갈수 있었다. 초입은 하얀세상의 별천지를 만들어 놓아 가슴이 뭉클 해졌다. 숲 지대를 지나며 쭉쭉 뻗은 적송군락이 눈에 덮혀 아름다웠다. 나이가 들수록 붉은 소나무가 좋아진다. 나이가 많은 나무에서 향기가 난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저렇게 고와야 한다는 다짐을 하며 한 발짝 한 발짝씩 내 걸었다.
적송들 밑에는 눈 덮힌 조릿대가 한 잎씩 보인다. 영혼이 맑은 어린아이들처럼 경쾌하고 수다스럽다. 눈속에서 속삭이듯 다정하다가 싸우듯 와삭대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바람이 눈을 몰고 가버리면 조릿대도 실망해서 조용해진다. 바람이 눈발을 휘몰면 붉은 소나무는 점잖게 관망하며 소리나게 웃지 않는다.
이 영혼의 소리를....
어리목으로 일찍 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려온다. 한가하고 한적하다 싶은데 깔닥고개는 깔린 눈이 미끄러워 한발 내 디디면 미끄러지며 고통스러웠다. 여기서부터 한라산 정수가 시작된다. 계속 오르막이다. 그러나 긴장하지 말자. 시야가 흐려 오백나한이 보였다가 흐리고 하는 반복을 거듭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과 같다. 산이 이루는 부드러움에 취하여 잠시 보고 있노라니 추워지기 시작한다. 땀이 비 오듯 하는데 바람에 식기 시작하여 오래 서 있을 수가 없다.
제주도는 곧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곧 제주도다. 이만큼 곱고 커다란 섬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주봉의 위엄과 힘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이 구상나무를 지나는 영실기암 지점이다. 이 곳을 지나 천천히 가면서 한라산 최고봉인 백록담을 바라보면 부드러움에 어울린 그 위용에 감탄하게 된다.‘ 손을 뻗으면 은하수에 닿을’ 만큼 높다는 ‘한라(漢拏)’라는 이름에 모자람이 없다. 바로 이것을 보기위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눈과 구름으로 온 산이 덮혀 볼수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계속올라, ‘살아천년 죽어천년’이란 구상나무 군락엔 눈이 아름다운 형체의 세계를 그려 놓았다. 카메라로 몇 컷을 하고, 다시 걷는다. 해발 1.500미터를 지나면서 조금 안심이 된다. 걷기는 수월한데 시야가 흐리고 24키로 카메라 가방이 부담이 되지, 또 무거운 삼각대가 어찌나 미운지, 구상나무 숲을 통과할 때마다 걸려들어 내 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곤했다.
눈이 계속 쌓여 잘못하여 발이 빠지면 무릎까지 들어간다. 나는 이미 구상나무 위의 눈꽃들 사이로 빠져 나왔다. 백록담이 보이지 않는다.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며 싸락눈이 얼굴을 스친다. 내 얼굴이 아니다. 카메라 가방속에 사가지고 조금씩 마시다 남은 물을 꺼내 꿀꺽 한모금 마시려 했으나. 꽁꽁 얼어 있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뜨거운 열과 같다. 누구든지 이 열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넓고 쾌적한 방안에 누워 있어도 그 열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번민할 수 밖에 없다.’는 부처님 말씀이 문득 생각난다.
‘노루샘’이 보인다. 그러나 얼어붙었다. 그 길로 조금 들어서니, 이곳에는 이미 구상나무숲도 이름다운 눈꽃도 사라지고 없다. 다만 몸을 날려버릴 것 같은 거센 바람과 백록담을 덮은 안개 외는 귀전을 스치는 매서운 바람소리 뿐이다.
산행의 즐거움은 산과 만나는데 있다. 산은 음악과 같다. 조용해야 들을 수 있다. 호젓하지 않으면 온몸의 피부가 그 정적을 감지할 수 없다. 일본의 한 하이쿠 시인은 “마음을 쉬고 보면 새들이 날아간 자국까지 보인다”라고 읊는다.
2월15일, 나는 열 번째로 한라산에 올랐다. 서쪽 길인 영실코스는 며칠전부터 눈이 쌓여, 겨우 초입까지 갈수 있었다. 초입은 하얀세상의 별천지를 만들어 놓아 가슴이 뭉클 해졌다. 숲 지대를 지나며 쭉쭉 뻗은 적송군락이 눈에 덮혀 아름다웠다. 나이가 들수록 붉은 소나무가 좋아진다. 나이가 많은 나무에서 향기가 난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저렇게 고와야 한다는 다짐을 하며 한 발짝 한 발짝씩 내 걸었다.
적송들 밑에는 눈 덮힌 조릿대가 한 잎씩 보인다. 영혼이 맑은 어린아이들처럼 경쾌하고 수다스럽다. 눈속에서 속삭이듯 다정하다가 싸우듯 와삭대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바람이 눈을 몰고 가버리면 조릿대도 실망해서 조용해진다. 바람이 눈발을 휘몰면 붉은 소나무는 점잖게 관망하며 소리나게 웃지 않는다.
이 영혼의 소리를....
어리목으로 일찍 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려온다. 한가하고 한적하다 싶은데 깔닥고개는 깔린 눈이 미끄러워 한발 내 디디면 미끄러지며 고통스러웠다. 여기서부터 한라산 정수가 시작된다. 계속 오르막이다. 그러나 긴장하지 말자. 시야가 흐려 오백나한이 보였다가 흐리고 하는 반복을 거듭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과 같다. 산이 이루는 부드러움에 취하여 잠시 보고 있노라니 추워지기 시작한다. 땀이 비 오듯 하는데 바람에 식기 시작하여 오래 서 있을 수가 없다.
제주도는 곧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곧 제주도다. 이만큼 곱고 커다란 섬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주봉의 위엄과 힘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이 구상나무를 지나는 영실기암 지점이다. 이 곳을 지나 천천히 가면서 한라산 최고봉인 백록담을 바라보면 부드러움에 어울린 그 위용에 감탄하게 된다.‘ 손을 뻗으면 은하수에 닿을’ 만큼 높다는 ‘한라(漢拏)’라는 이름에 모자람이 없다. 바로 이것을 보기위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눈과 구름으로 온 산이 덮혀 볼수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계속올라, ‘살아천년 죽어천년’이란 구상나무 군락엔 눈이 아름다운 형체의 세계를 그려 놓았다. 카메라로 몇 컷을 하고, 다시 걷는다. 해발 1.500미터를 지나면서 조금 안심이 된다. 걷기는 수월한데 시야가 흐리고 24키로 카메라 가방이 부담이 되지, 또 무거운 삼각대가 어찌나 미운지, 구상나무 숲을 통과할 때마다 걸려들어 내 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곤했다.
눈이 계속 쌓여 잘못하여 발이 빠지면 무릎까지 들어간다. 나는 이미 구상나무 위의 눈꽃들 사이로 빠져 나왔다. 백록담이 보이지 않는다.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며 싸락눈이 얼굴을 스친다. 내 얼굴이 아니다. 카메라 가방속에 사가지고 조금씩 마시다 남은 물을 꺼내 꿀꺽 한모금 마시려 했으나. 꽁꽁 얼어 있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뜨거운 열과 같다. 누구든지 이 열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넓고 쾌적한 방안에 누워 있어도 그 열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번민할 수 밖에 없다.’는 부처님 말씀이 문득 생각난다.
‘노루샘’이 보인다. 그러나 얼어붙었다. 그 길로 조금 들어서니, 이곳에는 이미 구상나무숲도 이름다운 눈꽃도 사라지고 없다. 다만 몸을 날려버릴 것 같은 거센 바람과 백록담을 덮은 안개 외는 귀전을 스치는 매서운 바람소리 뿐이다.
산행의 즐거움은 산과 만나는데 있다. 산은 음악과 같다. 조용해야 들을 수 있다. 호젓하지 않으면 온몸의 피부가 그 정적을 감지할 수 없다. 일본의 한 하이쿠 시인은 “마음을 쉬고 보면 새들이 날아간 자국까지 보인다”라고 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