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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낙엽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

나의 아파트 정원에 한 그루의 정정한 백합목이 있다. 여름이면 백합 같은 꽃이 만발한다. 잎사귀는 부채 모양으로서 은행나무 잎사귀만한 크기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이 나무를 바라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따라 여러모로 바뀌는 나무를 바라보고 출근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다.


나무는 자연의 철학자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낀다. 나무를 가만히 관찰하면 인생의 많은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가을은 낙엽의 계절이다. 봄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나고 여름에는 무성하고, 가을이 되면 땅에 떨어져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탄생과 성장과 사멸은 존재의 대질서요, 자연의 큰 섭리다. 이 세상에 한 생명으로 태어나 7,80년 살다가 낙엽처럼 떨어져 대지의 품에 안긴다. 나는 프랑스 상징파 시인 베들레느의 ‘낙엽’이란 시를 고인이된 장철 님(국제신보 사회부장)과 임명수, 이병기 등 시인들과 광복동 골목 ‘양산박’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 놓고 애송하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낙엽과 같은 인생이었다.


아파트 정원은 여러 종류의 나무가 낙엽으로 덮혀가고 있다. 나는 일부러 낙엽을 쓸지 말라고 부탁한다. 누런 잎사귀를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 그 위를 거닐면 바삭바삭하고 발 밑에서 나는 소리가 더욱 정답다. 나중에 모두 모아서 낙엽을 태울 생각을 하면 저절로 시흥이 솟구친다.
나는 낙엽에서 세 가지의 지혜를 배운다. 첫째는 ‘때’의 지혜다. 봄과 여름에는 절대로 잎의 떨어지지 않는다. 가을이 되어어야만이 낙엽이 되어 몽땅 떨어진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싹이 날 때가 있고 잎이 돋을 때가 있고, 꽃이 필 때가 있고 열매가 열릴 때가 있다. 천지 자연의 만물은 다 때를 따라 움직이고 때에 순응한다. 때에 맞게 움직이는 것을 순시(順時)라하고 하고 때에 거역하는 것을 역시(逆時)라고 한다. 순시하면 흥하고 역시하면 망한다. 때를 알아라. 그리고 때를 따라 움직여라. 이것이 낙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첫째의 지혜다.
둘째는 직분의 지혜다. 여름에는 왜 잎사귀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가을에만 떨어지는가. 그것은 자기의 직분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다. 태양에서 영양분을 흡수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나무를 성장시키는 것이 잎사귀의 직분이요. 사명이요, 책임이다.


잎사귀는 그 직분을 다할 때까지 나무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여름에 심한 폭풍이 불고 큰 비가 쏟아지면 잎사귀가 모두 가지에서 떨어질 것 같은데 무서운 집착력을 가지고 가지에 악착같이 붙어있다. 일찍이 지혜의 거장인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공수신퇴(攻遂身退), 천지도야(天之道也). (노자 도덕경 9장)” 자기의 직책과 공을 완수한 다음에는 조용히 물러서는 것이 하늘의 도리요, 자연의 길이다.
나무의 잎사귀는 그 지혜의 실천자요, 도리의 수행자다. 가을이 되어 바람 한 점이 없는데도 잎사귀는 한 잎 두잎 저절로 조용히 땅에 떨어진다. 그것은 때를 알고 때에 따른 잎사귀의 놀라운 지혜다.
끝으로 헌신의 지혜다. 낙엽은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되어 봄에 돋아날 새싹을 위하여 새 생명의 준비를 한다. 그것은 자기를 버리는 것이요, 자기를 바치는 것이다. 낡은 것은 새것을 준비해야 한다. 묵은 생명은 새 생명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연의 만물은 생생육육할 수가 있다.

우리는 낙엽에서 헌신의 지혜와 덕을 배운다.
산다는 것은 높은 목표와 위대한 것을 위하여 자기의 존재를 바치는 것이다.
때를 알아라, 네 직분을 다하여라. 그리고 네 생명을 바쳐라.
이것이 낙엽이 우리에게 주는 세 가지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