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의 이미지’
무릇 사라지는 것은 그리움을 낳는다. 그러나 사라진 뒤에 그리워한들 이미 늦은 것이다. 늦게나마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해 보고자 길을 나선다. 이른바 사라져가는 이땅의 서정과 풍경, 사람과 문화에 대한 기록, 이미 사라진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당대의 누구라도 길 떠날 필요가 있었고, 단편적이나마 그길에서 보고 듣고, 만나고 얻은 것들을 기록한다는 것에 나는 작은 의미를 두고 있다.
무릇 사라지는 것은 그리움을 낳는다. 그러나 사라진 뒤에 그리워한들 이미 늦은 것이다. 늦게나마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해 보고자 길을 나선다. 이른바 사라져가는 이땅의 서정과 풍경, 사람과 문화에 대한 기록, 이미 사라진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당대의 누구라도 길 떠날 필요가 있었고, 단편적이나마 그길에서 보고 듣고, 만나고 얻은 것들을 기록한다는 것에 나는 작은 의미를 두고 있다.
새벽 해운대 청사포를 거쳐 기장의 토우집, 그리고 죽성을 다녀왔다. 아침해를 뵙고 독야청청 그푸른 늙디 늙은 소나무를 만나 그 간의 안부를 묻고, 토우들과 팥죽 한그릇을 놓고 부르지 못한 노래를 한바탕 불러대고, 촌 할멈들이 정성을 담은 김장꺼리를 보고...이래서 하루는 그저 덧없이 지나갔다.
잃어버린 꿈을, 사그라진 희망을 찾으려 바둥대던 한 해, 그 시간이 아무리 소중해도 이제 뒤돌아보지 말자. 시간이 빠져나간 과거는 박제일 뿐, 더 이상 꿈과 희망을 묻을 수 없다. 과거를 돌아나와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 그래서 시린 바람도, 아픈 현실도 내 안에 삭일 수 있다. 우릴 깨우려 바람이 분다.
실오라기 한 올 안 걸쳐도, 나무들 알몸으로 찬바람 견디는 것은, 발밑에 따뜻한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땅 속에서 타오르는 생명의 불길, 추위가 왔다가도 사나흘이면 물러가는 것은,
저 숨은 불길 때문입니다. 희망은 늘, 보이지 않은 곳에 감춰져 있다. 보이지 않아도, 별들은 대낮에도 빚나고 있듯이...,
야윈 살림, 올핸 배추도 무도 넉넉히 절입니다. 곰삭은 육젖 고춧가루 훼훼 버무려, 기원처럼 소망 한줌 뿌려, 겨우내 퍼낼 항아리 가득 사랑, 남은 무채 시루떡 쩌 돌리면, 시립짝 넘넘나드는 햇귀 같은 인정, 싼 바람, 그 바람 매워 더 큰 알큰한 속살, 요강 얼라 들여놔라, 괜히 손인심 크던 할머니 생각 납니다.
사진을 찍는다하면 여전히 등장하는 몇십년씩 우려먹는 소재들이다.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다.누가 찍어도 똑같은 구도와 분위기, 섞어 놓으면 다른 사람의 사진과 전혀 분간 할 수 없는 중복된 이미지들...,
대부분의 풍경이다. 낙조, 일출, 눈덮힌 겨울산, 낙엽진 숲속, 갯벌위의 고깃배. 이끼, 예쁜집같은 그랄싸해 보이는 내용들이다.
사진은 무엇을 찍건 자신의 느낌과 관점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중요한 요소를 빠뜨린 사진은 핏기없는 아름다움 그 이상이 아니다. 남들이 바라본 시선을 그대로 답습하고 추종하는 자신의 부재가 문제 인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풍경을 통해 자기만의 시선을 불어놓고 마음까지 담는 사진이 바로 좋은 풍경사진이라 할 수 있다고...,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사진은 시작은 쉽지만 험난한 과정과 허비한 시간, 열정을 키워야 겨우 알게 되는 섭렵의 세계라는 것을 터득하고 있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알아야하고 느껴야 하는 일련의 과정과 시간의 허비가 바로 사진의 완성인 것이다.
사진역시 찍고, 찍고 또 찍는 사이에 나만의 차별이 비로소 싹이 트고 이과정을 사랑하는 동안 사진의 맛과 느낌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사진찍기는 이러한 삶의 차별성 획득을 통해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방법에 다가서게 된다고 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