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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뗑그렁, 어두움이여, 영원히

‘窓의 이야기’
이 사진들은 지난해 ‘용호동’ 농장이 철거 되기 전 찍어 둔 것을 기억의 창고에서 퍼 온 것들 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개발이란 미명 아래 남겨져야 할 우리들의 삶의 과거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이죠, 그때 취재차 들렸을 때, 그래도 삶의 분위기에 비해 주민들은 많은 보상을 받았다고 느꼈을 정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주민들은 떠나고, 스레트집은 헐리고 고층 아파트는 들어서고…….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반가운 연하 엽서 한 장, 좁은 공간에 깨알같이 적어 보낸 간절한 소망과 다짐, 엽서에선 햇살이 살아 퍼덕거렸다. 그리고 쑥 냄새가 났다. 저무는 한해, 모두들 새 빛을 품는다. 노을엔 얼굴을 씻고 새 빛으로는 마음을 씻어야지.


시인이 아니라도 세모(歲暮)가 되면 공연히 마음이 적막(寂寞)해 진다. 먼 여행이라도 떠나야 할 것 같고, 혹은 돌아 온 것도 같고......., 그런 심경(心境)이다. 시간은 무슨 신비로운 힘을 숨기고 있으면서 때때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이렇게 파문을 던진다. 우리는 흔히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라고 말한다. 역사는 언제나 과거와 함께 있다. 그래서 과거와의 대화가 곧 역사라고도 말한다.
“새로운 역사”란 곧 지난 일들과의 대화 속에서 새로움을 찾자는 뜻이기도 하다. 시간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은 그런 것에 의미가 있다. 지난 일들이라고 모두 휴지처럼 버려야 할 필요는 없다. 그 가운데는 보람스럽고 값어치 있는 일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란 지난 일들 속에서 잘못된 것을 반성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시간은 언제나 촌각(寸刻)이 새롭다. 우리는 지난 일들과 대화를 통해 새로움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새로움을 찾지 못하는 시간의 운행(運行)은 어두운 죽음으로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나라는 물론이며, 우리의 사회, 우리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그렇다.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오는 것은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아니다. 그 태양이 그전과 다름없이 동녘에서 솟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일의 태양을 어제의 그것으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새로움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새로움이란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다. 어제와 다르면 그것이 바로 새로움일 수 있다. 제야(除夜)는 지난 일들과 매듭을 짖는 순간이다. 결단이라고 해도 좋다. 각성(覺醒)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의 끝도 없는 대하(大河)에 실려 가면서도 때로는 그 흐름에 거역하면서, 때로는 새로운 물굽이를 맞을 줄도 알면서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의 온갖 음향(音響)중에서도 가장 장엄하고 감회 깊은 것은 묵은해를 울려 보내는 제야의 종소리다. 그것은 다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들과 고별하는 경종(警鐘)이며, 새로움을 알려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뗑그렁 울릴 때마다 우리는 후련한 통쾌함을 느낀다. 어두운 과거를 끊어 버리는 통쾌함이며, 새아침을 맞는 기대이기도 하다.
벗이여, 어제의 우리는 찬 손만을 주고받았지, 올해의 마지막 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덥히고, 손을 따뜻이 하고 내일을 맞자, 어두운 어제는 영원히 나락으로 떨쳐 버리고 새해는 새마음, 새각오로 어제와는 다르게 살자. 뗑그렁, 어두움이여, 영원히-.
야윈 살림, 올해 배추도 무도 넉넉히 절입니다. 곰삭은 육젓 고춧가루 홰홰 버무려, 기원처럼 소망처럼 소망 한줌 뿌려, 겨우내 퍼낼 항아리 가득 사랑, 남은 무채 시루떡 쪄 돌리면, 사립짝 넘나드는 햇귀 같은 인정, 싼바람, 그 바람 매워 더 알큰한 속쌈, 요강 얼라 들여놔라, 괜히 손 인심 크던 할머니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