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가장 잔인한 재앙이다’
(사진은 '호치민 전쟁박물관'전시된 사진을 찍은 것이다.)
지난 9일부터 14일까지 5박7일간 ‘하노이, 하롱베이, 비엔티엔, 루앙프라방, 시엠립, 호치민’을 둘러보고
15일 새벽7시경 귀국했다.
어느 노장스님이 일찍 잡은 계획이고 배려라서 어쩔 수 없이 다녀와야 하는 여행이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가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날씨는 35-38도를 오르내려 후덥지근하고,
그 더위에 체력이 바닥나 혼쭐이 났다. 이번 여행은 훑어보는 정도이고 기회가 되면 느긋하게 일정을
챙겨 다시 가 보고 싶다.
‘호치민 전쟁박물관’을 보면서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전쟁은 무슨 이유에서든지 인류에게 가장 잔인한 재앙이다. 이 사진들은 베트남이 주관적인 입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전쟁 참상이 참혹해 사진을 볼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팠다.
이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 는 여러 설이 있다. 그러나 다만 여행속에 이런 참상의 사진을 보고
전쟁이 이런 것이다 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이 사진을 어떻게 찍었고 어떤 경위로 보도가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기자정신의 발로라고 본다. 이 기자는 다만 미군들이 찍은 것을 입수하여 실상을 보도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고 기억된다.
필자도 ‘호지명’을 좋게 보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전쟁박물관을 보고 나서,
우리나라 김구선생과 같은 오로지 국민을 생각하는 훌륭한 민족주의 지도자라는 느낌에 접근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정약용 ‘목민심서’를 탐독 우리나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호치민 공직사회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호지명’은 생존시‘ 내가 죽으면 비석 등 숭배물을 설치 하지말라.’ 고 했으나.
민족주의자로서 베트남에 대한 그 뜻이 국민전체 뜻이라 동상을 건립하게 되었고,
어린이들이 국가의 자산이라며 출산을 장려하고
어린이들을 사랑했다고 한다. 동상에도 어린이를 같이 새겨 어린이들이 미래의 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호치민’ 은 ‘사이공’이 월남전으로 패망이후 생겨난 이름이다.
이곳에는 인구 중 60%가 젊은 청년들이라, 아시국가 중 제일로 희망의 나라로 꼽힌다고 한다.
길가에는 오토바이를 탄 시민들이 거의 차선을 차지하고 정신없이 복잡하게 다니고 있어, 정신을 멍하게 했다.
월남전 당시 한국군은 나트랑 또는 사이공에 비전투부대가 있었고, 채명신 파월 사령관은 영웅시 한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파월사령관으로 월남 도착 후 작전권 행사를 놓고 미군들과 왈가왈부하는 자리를 박차며 퇴장해
미군을 당혹스럽게 한 인물로 호치민 사회에 알려져 칭송 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덧 붙였다.
루앙프라방에서 귀국길 비행기 시간 탓에 약 4시간 정도 ‘호치민’에 머물게 되었고 그 시 간에 승용차 편으로
호치민 시내와 이곳 전쟁 박물관을 들렸다. 그리고 ‘사진’은 전시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명치 못하다.
너무 가슴이 아파와 우리가 겪은 6.25사변을 떠 올리며 이 글을 쓴다.
다만 비슷한 점은 ‘중국’ 모택동과 김일성, 그리고 모택동과 ‘호지명’이 등장한 동시대 일이란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