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姜太公같이 살라하네
강갑준
2008. 8. 1. 10:54
이 여름, 휴가철에 책 한권을 읽기를 권합니다. 논어(論語)입니다. 난해한 부분도 있지 만 읽다보면 뜻이 저절로 통할 것입니다. 주역서라 책이 많습니다. 그러나 잘 골라 읽으면 일생 살아가는 동안 ‘삶이 무엇인지?’ 터득할 수 있는 생활의 지혜가 될 것입니다.
논어(論語)는 공자의 말씀과 제자들과 나눈 말씀을 엮어놓은 책입니다. 동양정신을 알자면 ‘논어’를 반드시 읽어두어야 합니다. ‘논어’는 사람이 되는 법과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가를 밝혀줍니다.
‘논어’는 어떤 지식을 전달하려는 것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나 사람이 되는 법을 주로 말씀 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되는 법이나 사람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공자는 인의(仁義)의 길이라고 밝혀두고 있습니다.
인(仁)은 남을 먼저 사랑하라는 것이고 의(義)는 인(仁)을 실천하지 못하면 부끄러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논어’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길을 밝혀놓은 책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논어’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낚시질은 하지만 투망질은 하지 않는다.” 욕심을 너무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노력한 만큼 획득하는 것으로 만족하라 함입니다. 턱없이 남보다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거나 탐을 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낚시질에 물린 고기만 낚는다. 이것은 욕심을 절제하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투망질은 물속에서 노니는 고기를 통째로 끌어 올립니다. 이것은 사납게 탐욕을 부리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얻는 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일을 조금만 하고 얻어내기를 엄청나게 탐하는 것은. 이른바 한탕주의, 투망질과 같습니다. 투망질을 하면 수많은 고기를 한꺼번에 잡을 수가 있습니다. 투망에는 큰 고기도 있고 아주 어린 새끼도 걸려들게 됩니다. 요즘의 속된 말로 한다면 싹쓸이를 하자는 짓입니다.
현대인은 탐욕을 주저치 못하여 여러 가지 뒤탈을 불러옵니다. 맹자(孟子)는 물질을 사용하는데 예(禮)로써 하라고 했습니다. 맹자의 당부도 역시 투망질을 하지 말라 함입니다. 내가 투망질을 하면 너도 투망질을 하게 된다. 그러면 강(江)의 고기는 씨가 마르고 투망질만 일삼는 어부는 고기가 없는 강을 떠나야 합니다. 이처럼 탐욕(貪慾)을 멈추지 않으면 살 곳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려는 탐욕 탓으로 물이 썩어가고 흙이 썩어가고 바람이 썩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루를 잘 먹기 위하여 내일 먹을 양식마저 다 먹어버리는 것이 공해(公害)라는 문제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그런 질서를 자연법칙이라고 합니다. 그 법칙을 어기면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낚시질을 하되 투망질은 않는다고 밝힌 공자의 말씀은 우리를 반성하게 합니다.
강태공(姜太公)은 낚시꾼의 대명사.
그는 욕심이 없는 자로 상징됩니다. 강물에 낚싯대만 드리우고 낚싯줄에는 낚시를 매달지 않았던 강태공, 그의 낚싯대는 무욕(無慾)의 상징 이였습니다. 무욕은 너무나 어려운 경지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알맞게 지닌다는 마음이 있다면 욕심이란 것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한 능력을 극대화(極大化)해야 합니다. 이렇게 ‘논어’의 말씀이 외치고 있는 셈입니다.
논어(論語)는 공자의 말씀과 제자들과 나눈 말씀을 엮어놓은 책입니다. 동양정신을 알자면 ‘논어’를 반드시 읽어두어야 합니다. ‘논어’는 사람이 되는 법과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가를 밝혀줍니다.
‘논어’는 어떤 지식을 전달하려는 것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나 사람이 되는 법을 주로 말씀 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되는 법이나 사람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공자는 인의(仁義)의 길이라고 밝혀두고 있습니다.
인(仁)은 남을 먼저 사랑하라는 것이고 의(義)는 인(仁)을 실천하지 못하면 부끄러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논어’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길을 밝혀놓은 책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논어’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낚시질은 하지만 투망질은 하지 않는다.” 욕심을 너무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노력한 만큼 획득하는 것으로 만족하라 함입니다. 턱없이 남보다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거나 탐을 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낚시질에 물린 고기만 낚는다. 이것은 욕심을 절제하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투망질은 물속에서 노니는 고기를 통째로 끌어 올립니다. 이것은 사납게 탐욕을 부리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얻는 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일을 조금만 하고 얻어내기를 엄청나게 탐하는 것은. 이른바 한탕주의, 투망질과 같습니다. 투망질을 하면 수많은 고기를 한꺼번에 잡을 수가 있습니다. 투망에는 큰 고기도 있고 아주 어린 새끼도 걸려들게 됩니다. 요즘의 속된 말로 한다면 싹쓸이를 하자는 짓입니다.
현대인은 탐욕을 주저치 못하여 여러 가지 뒤탈을 불러옵니다. 맹자(孟子)는 물질을 사용하는데 예(禮)로써 하라고 했습니다. 맹자의 당부도 역시 투망질을 하지 말라 함입니다. 내가 투망질을 하면 너도 투망질을 하게 된다. 그러면 강(江)의 고기는 씨가 마르고 투망질만 일삼는 어부는 고기가 없는 강을 떠나야 합니다. 이처럼 탐욕(貪慾)을 멈추지 않으면 살 곳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려는 탐욕 탓으로 물이 썩어가고 흙이 썩어가고 바람이 썩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루를 잘 먹기 위하여 내일 먹을 양식마저 다 먹어버리는 것이 공해(公害)라는 문제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그런 질서를 자연법칙이라고 합니다. 그 법칙을 어기면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낚시질을 하되 투망질은 않는다고 밝힌 공자의 말씀은 우리를 반성하게 합니다.
강태공(姜太公)은 낚시꾼의 대명사.
그는 욕심이 없는 자로 상징됩니다. 강물에 낚싯대만 드리우고 낚싯줄에는 낚시를 매달지 않았던 강태공, 그의 낚싯대는 무욕(無慾)의 상징 이였습니다. 무욕은 너무나 어려운 경지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알맞게 지닌다는 마음이 있다면 욕심이란 것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한 능력을 극대화(極大化)해야 합니다. 이렇게 ‘논어’의 말씀이 외치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