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花下漫筆

강갑준 2009. 4. 8. 11:33
봄꽃은 예부터 살구꽃과 복숭아꽃을 꼽았다.
대지에 한기(寒氣)가 가시면 어느새 이들 나무엔 꽃망울이 맺혀 있게 마련이다. 진흙담 너머로 소복을 한 살구꽃이 피어나는 정경은 누구나 깊은 향수와 함께 봄에 일깨워지는 심저(心底)이다. 살구꽃의 아름다움은 고향을 떠나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꽃도 시류를 타는지 요즘은 벚꽃을 보고 환호하는 상춘객은 많다. 벚꽃은 원래 습한 기후의 땅을 좋아한다. 일본에 벚꽃에 많은 것은 그런 생태와도 관련이 있다. 살구꽃은 벚꽃보다는 훨씬 소박하다.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우리나라의 시골에서는 뒤뜰에 흔히 심어져 있다. 그 열매도 좋으려니와 목재로도 훌륭하다. 질박(質朴)한 나뭇결하며 그 굳굳한 목질은 한국인의 기호에도 맞는 것 같다.

우리의 옛 노래엔 살구나무를 소인(小人)에 견주고 있다. 그러나 ‘화하만필(花下漫筆)’을 서술한 호암(湖巖) 문일평(文一平)의 글에서는 요염한 미인에 비해야 옳다고 설파(說破)하고 있다. 선연(嬋娟)과 명려(明麗)함은 도화(桃花)나 해당(海棠)에 못 미치지만 요염은 그 어느 꽃보다도 앞서 있다는 것이다.
김억(金億)과 같은 작고(作故)시인은 ‘하늘하늘 밤바람이 틀고 매는 사정(舍亭)에 연분홍 살구꽃이 송이송이 떨리오.’라고 사뭇 감각적인 살구송(頌)을 읊은 일도 있다.

부산의 살구꽃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간혹 길가를 지나다 기와집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벚꽃은 금정구 베네스트 골프장, 남천동 비치아파트가 명소로 꼽힌다. 베네스트 골프장 벚꽃은 1백년은 족히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이 생존 시 일본통으로 골프장 입구에서 부터 화려하게 심는 것이 좋다하여 심었다고 고 정중환 박사가 말한 바 있다.
이런 벚꽃을 두고 학자들 간 출생지 논쟁도 뜨거웠던 일도 있었다. 어느 학자는 벚나무의 원산지는 한반도라고도 한다. 제주도에서 그 원종(原種)을 발견했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은 우리의 토속적인 정취가 깃든 살구꽃은 오히려 귀하고 벚꽃만 무성한 세상이 되었다. 그 꽃은 어딘지 일본의 취향이 엿보여 마음 한 구석으론 역겨운 느낌마저 없지 않다.

하지만 벚꽃은 많은 나무가 어울려 하늘을 덮은 듯이 피어나면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봄의 총애를 받을 만도 하다. 더구나 꽃이 질 때의 정경은 눈발이 날리는 것 같은 눈부신 면모도 보여준다.생각 같아서는 살구꽃도 그처럼 가꾸어 우리의 향토적인 정감을 일깨워 보았으면 좋겠다.
그 소박하면서도 화려하며 한편으로는 겸손한 듯한 말로 살구꽃은 어딘지 우리의 민족감정에도 어울리는 것 같다.
이제 봄도 한 고비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