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가을밤은 깊어 가고 있습니다.
강갑준
2006. 9. 6. 07:49
가을이 왔습니다.
무덥던 낮과 열대야에 시달리던 밤을 뒤로 하고 이제는 제법 선선한 바람도 불어 옵니다. 절기로 보면 처서도 한참 지나고 내일 모레면 백로입니다.백로는 들녘의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한 때를 말합니다. 고추는 더욱 붉은 색을 띠기 시작하고 갖가지 색들로 치장한 코스모스들이 한들한들 피어 가을을 알릴 것입니다.고독의 시인 김현승은 9월은 가을의 첫입술을 서늘한 이마에 받는 달이라고 했습니다.
“구월에 처음 만난 네게서는/ 나프탈린 냄새가 풍긴다./ 비록 묵은 네 양복이긴 하지만/ 철을 아는 너의 넥타인 이달의 하늘처럼/ 고웁다.”(‘가을이 오는 날’ 중에서) 그리고 먼 수평선이 높은 하늘로 서서히 바뀌고, 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이라 했습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작가 신영복은 편지글에서 가게에 내놓은 사과알의 색깔과 굵기로 가을의 심도(深度)를 측정하던 기억이 있다고 썼습니다. 풀빛의 어린 사과가 가게의 소반 위에서 가을과 함께 커가면 사과나무가 없는 도시인들도 그나마 사과 한 알만큼의 가을을 얻기도 할 것입니다.가을의 심도를 측정하는 일이야 어디 사과뿐이겠습니다만, 가을이라는 말만으로도 그 나름의 청정함과 나직한 떨림처럼 다가옵니다.
“저는 아직 집을 갖는 것이 허용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아직 정주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방황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이 저의 운명입니다.”‘가을날’의 시인 릴케도 편지에서 가을을 이렇게 썼습니다.방랑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이 운명이라고 스스로 말합니다.
역시 가을의 깊이를 알게 해줍니다.귀뚜라미는 7월에는 들녘에서 울고, 8월에는 마당에서 울고, 9월에는 마루 밑에서 울고, 10월에는 방에서 운다고 합니다.그만큼 주변 기온에 민감하다는 것이겠지요. 사람이라고 다르겠습니까만은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맞춰 한권의 책이라도 가까이 하면 어떨까요.
오늘도 가을밤은 깊어갈 것입니다.
('제주 용눈이 오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