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가을이 오고

강갑준 2006. 8. 31. 22:34

당나라의 명승 조주(趙州)에게 어느 선승(禪僧)이 물었다. “무궁화 꽃잎에 이슬이 멎고, 오동나무 잎에 가을바람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서 어떤 인생의 진실을 찾아낼 수 있습니까?’ ‘나비가 오지 않아도 꽃은 지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버드나무의 씨는 난다데.’이렇게 조주는 대답했다.

아무리 꽃이 아름다워도 언젠가는 진다.아무리 여름이 기승을 부린 다해도 언젠가는 이슬이 가을을 알리고 잎이 떨어진다.
무상(無常)한 것이 계절이다. 그러나 꽃이 지는 것은 비바람의 탓은 아니다. 꽃은 피면 지기 마련이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 이미 그것은 질것을 전조(前兆)하고 있는 것이다.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무상한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고 슬픔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을이 되면 꽃이 지고 잎도 지는 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지는 꽃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씨가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의 진실에도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8일은 백로(白露),
이슬이 여름의 열기를 식히며 가을을 재촉하는 철이 된 것이다. 이슬을 먹고 벌레는 자란다. 이슬을 안고 자연의 풀밭은 한결 아름다워진다. 그러나 이슬은 허무한 것. 어느새 맺혔는가 하면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인생은 이슬과도 같다고 얘기한다.

이슬이나 인생이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더욱 아름답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일찍 떨어지는 꽃, 떨어지기 쉬운 꽃일수록 더욱 아름답기만 하다.마치 짤막한 삶의 한 순간을 가장 성실하게 살아나가겠다는 마음씨가 담겨 있는 것처럼.

이슬처럼 사람도 사라진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인생처럼 허무한 것은 없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다가오는 죽음을 막을 길은 없다.
아무리 큰 꿈을 앉고 있어도 아무리 하는 일이 많아도 인생은 이슬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사람은 살아 나가야 한다. 또 살수 있는 데까지 그 삶의 한순간순간을 충실한 것으로 만들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가을에서 무상을 느끼는 것도 좋다. 그리고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슬픔 속에 흠뻑 젖어드는것도 좋다. 그러나 인생의 모습이란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공즉시색(空卽是色)에서 비로소 사람의 모습은 완결되는 것이다.
이슬은 사라졌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또 맺는다.인생도 마찬가지다. 생겼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 생겨나는 것이다. 살면서 죽음을 안고, 죽음 속에서 삶을 안고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게 또 가을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영원한 교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