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가을이 짙어져 간다

강갑준 2009. 9. 16. 19:59

- 사진들은 지난 20일 '제주' 일출봉, 용눈이오름 등 에서 찍은 것입니다.-
가을이란다.
가을이 보이는 것이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산에서,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걷는 샐러리맨들의 표정에서,
그리고 화사한 햇빛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사과의 색깔에서 가을이 보이는 것이다.

가을이 들린다.
귀뚜라미의 가냘픈 소리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소리에서, 그리고 바람소리에서 가을이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한낱 옛 얘기일 뿐이다. 지금은 아무도 가을을 듣고, 가을을 보지도 않는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 없는 게 도시의 가을이다.

나무들은 단풍이 지기도 전에 시들어 가고 있다. 아무 곳에서도 이제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낙엽도 가을의 낭만이나 감상을 조금도 불러 일으켜 주지는 않는다. 도시의 길거리는 완전히 계절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가을이란 본래가 느끼는 것이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아니다. 불현듯이 서글픔을 느낄 때, 가을은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시인들이 예부터 단장(斷腸)의 애수에 젖은 노래들을 가을에 즐겨 부른 것도 이 때문이라 할까.

상전간월광(牀前看月光) 의시지상상(疑是上霜)
거두망산월(擧頭望山月) 저두사고향(底頭思故鄕)
이백(李白)의 오언절구(五言絶句)다. 이 시도 가을에 이백이 읊었던 게 분명하다.
이런 감상에 젖게 만드는 것은 가을 달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같은 가을이라도 9월과 10월과는 다르다.
/이슬과 감미로운 과실이 여무는 계절이여.....,/ 이렇게 ‘키츠’가 노래한 것은 9월의 가을이지 10월은 아니다.
우울한 나날, 1년 중 가장 슬픈 계절이 왔다.....고 ‘브라이언트’가 노래한 가을이 바로 10월부터를 두고 한 노래임이 틀림없다.
9월의 사과는 그저 탐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10월의 사과는 그 아삭거리는 차가운 감정이 고독을 씹는 것 같이만 느껴지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도시 외로운 게 가을인가보다. 서글픔을 안겨 주는 게 가을인가보다. 그런 가을을 두고 누가 아름답다고만 했을까.
미인위황토(美人爲黃土) 황내분무가(況乃粉無暇)....이렇게 두보는 인생의 허무함을 가을에 노래했다.
가을이 아니라도 허무를 못 느꼈을 두보는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가을에 더 뼈저리게 그런 느낌을 사람들은 갖게 되는 게 보통이다.
백조(白鳥)는 끝없이 높이 날고 외로운 배 홀로 떠내려가네. 하찮은 세상살이 별것 없는데 공명(功名)찾아 반세(半世)를 허둥댔다니....
이런 후회를 김부식(金富軾)에게 안겨준 것도 가을이었다.
가을이 짙어져 간다. 그저 짙어져만 간다. 아무 느낌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