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가을, 불국사 그리고 낙엽

강갑준 2005. 11. 11. 20:36

아주 오래 전에 ‘만추’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그 영화의 마지막 대목,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바람에 흩날리는 고궁에서 여인은 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다 마침내 발길을 돌린다.
가을바람과 그리고 낙엽은 그 애처로운 만나지 못함 만큼이나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흔히 쓸쓸함, 이별 같은 것을 떠오르게 하는 낙엽은 목숨받고 태어났던 것들이 이 땅을 하직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월명사는 향가‘ 제망대가’에서 누이의 죽음을 ‘어느 가을 이른 밤에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비유했다. 그래서 한 잎 낙엽은, 쫓기듯이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문득 던져지는 하나의 물음일 수도 있다. 무엇하러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하는 것인지? 그런 물음을 궁글리느라 우리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찾기도 한다.

늦가을 불국사 뜨락은 그런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아침나절 관광객이 뜸한시간, 뜨락을 덮다시피 하고 있는 고목들에서 낙엽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본 적이 있다. 불국사를 사진찍겠다고 그곳을 찾아갔던가 그랬는데, 우수수지는 낙엽의 소슬함에 젖어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만추,라든가 ‘제망대가’를 떠 올리면서 조금은 비감한 기분이 되어 올해 곁을 떠난 어느 친구를 더 올리기도 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햇살, 그 햇살은 옛 기억속에 빠져 있던 나를 불러내어 도로 불국사 뜨락에 세워 놓았다. 나는 가을햇살이 얼마나 깨끗한지를 그때 깨달았다. 겨울햇살처럼 창백하지도 않고, 여름햇살처럼 뜨겁지도 않고 그리고 봄햇살처럼 노곤하지도 않고, 가을 햇살은 맑고 밝았다.

나는 그 청명한 햇살을 받고 있는 불국사를 발견하고는 내가 거기 갔던 이유를 떠올리기에 이르렇다. 그렇게 해서 사진을 찍고 나서 다소 밝아진 기분으로 불국사 경내를 여기저기 거닐던 나는 가을햇살에게서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단풍잎’ 이었다. 내일을 미리 생각해본다. 경주 불국사를 찾아 갈 것이다. 벌써 마음이 들떠 가라앉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