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금정산 야생화
강갑준
2006. 12. 23. 11:10
금정산을 오르내린지가 꼭 20년이 다 되어 간다. 얼마나 많이 쏘다니며 능선 전설, 야화를 수집했고, 또 미친 듯이 고증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금정산에 해박한 지식이야...., 김부환 선생, 박정희 대통령당시 부산일보 문화부 차장을 지낸 고 이 성순 선생님이라고 믿고 있다. 금샘. 밀양박씨 할미와 고당봉 이야기, 김춘추의 화랑 돌 바위. 제2금샘 등 등 숱한 기암괴석에 얽힌 야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필자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한 추억이다.
이런 자료를 모아 ‘금정산 재발견’이라는 글을 '작은 신문'에 연재했었다. 그럴 즈음 범어사 주지인 정관스님이 그 원고를 하도 원해 약간의 고료를 받고 넘겨주었는데, 어느 분이 그 원고를 가필 책을 발행한 것을 보고, 쓰린 가슴을 앉은 아픔도 있었다.
금정산을 다니며, 철 따라 꽃을 피우는 야생화를 보면서, 천박한 땅속에 그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생명의 끈을 이어가면서 살아가는 그 생명력에서. 나는 로고스의 신봉자가 아니라 뮈토스(이야기)의 신봉자란 것을 느꼈고, 또 나는 논증하는 대신 이야기를 통하여 내가 살아온 세상,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모습을 펼쳐보고 싶다. 는 생각을 갖었으니까. 좀 심하게 말하면 내 황금기는 금정산과 더불어 살아왔다고 표현해도 될 성싶다. 그것뿐이랴. 그 야생화의 향기 속에“맑은 가난은 인간의 고귀한 덕이다”는 것도 느끼게 했다.
그러나 다른 일에 미쳐(?) 금정산을 멀리 한지가 몇2·3 년이 된다. 이제 마음을 고쳐먹고 금정산에 가야 할까보다. 우선 금정산에 가면 정신이 맑고 마음이 투명해지며 자기 분신의 사람의 질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요즘 금정산은 겨울바람에 잎이랑 열매랑 훨훨 떨쳐버리고 빈 가지만 남은 잡목 숲, 가랑잎을 밟으며 아침 햇살에 숲길을 거닐면, 문득 나는 내 몫의 삶을 이끌고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가를 헤아리게 된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그 세월을 제대로 살아왔는가를 돌이켜 볼 때 나는 우울할 상 싶다.
추억은 존재의 뿌리라고 거창하게 말하거니와 말하지 않더라도 추억은 삭막한 현재를 견딜 수 있게 만드는 큰 힘이다. 기억 속에서는 이미 희미해진 것들, 다만 어슴푸레한 이미지로 남아 있던 그 시절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얼굴을 들이 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