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목련이 질 때
강갑준
2005. 4. 9. 14:55
살랑 바람, 목련이 집니다. 희다 못해 고고하더니, 거뭇거뭇 고대 썩어 떨어집니다. 떨어진 꽃잎엔 며칠의 아름다움은 흔적도 없습니다.
떠날 때 깨끗하게 가야지, 목련 질 때면, 아침마다 속옷 갈아입으시던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흐려 마음까지 흐린 날, 마음의 속옷을 갈아입습니다.
아침(9일) 통도사 ‘목련’을 뵈었다. 고고함보다 잘생긴 목련,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닮았다(?). 그가 선종하고 묻혔다는 보도에. 자연으로 회귀한 그를 추모키 위해선지 모른다. 그저 울적해(?) 간 길이다. 흐린 날씨에 목련은 무거운 침묵속에 낙화하고 있었다.
이어 내려오는 길, 서운암 들꽃을 만나고, ‘산 채밥’ 한 그릇 챙겨 비우고...집에 돌아와,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생각에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이 이야기를 쓴다.
요한바오로 2세 이야기
폴란드의 시골 중학교에 대주교(大主敎)가 찾아왔다. 환영사를 하는 학생 대표가 여간 똘똘하지 않았다. 환영사를 끝낸 학생을 불러 대주교가 장래 희망을 물었다. 우렁찬 목소리로 학생이 대답했다. “연극배우요!” “저런!” 신부(神父)가 되겠다는 대답을 기대했던 대주교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 소년은 커서 교황이 됐다.
죽음은 삶의 거울과 같다고 한다. 죽음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비춰 보여준다. 개신교와 불교 등 종파를 초월해서, 그리고 미국과 이슬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불목의 쌍방이 함께 그의 선종(善終)을 애도하고 있다. ‘평화의 사도’로서 그가 살았던 삶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높은 산이 그렇듯이 위인은 바라보는 사람에게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역사는, 그가 고르바쵸프와 바웬사를 도와 철의 장막을 무너뜨린 업적을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역사는 그의 다른 업적-십자군 전쟁, 유대인 박해, 갈릴레오를 박해하고 다윈을 배척한 과오 등 과거 교회의 어둡고 나약한 ‘인간성’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한 교황의 용기를 더 드높게 평가할 것이다.
연극을 사랑하고, 카누와 스키 타기를 좋아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과 릴케의 시를 애독했던 남자-요한 바오로 2세의 풍부한 인간성이 온 곳을 짐작케 하는 대목들이다. 교황의 인간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스위스의 신학자 한스 큉 신부는 교황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교황도 틀릴 수가 있다”는 그의 주장에 교황은 웃으며 응수했다고 한다. “큉은 틀릴 수가 없습니다.”
1981년 교황은 터키 청년 메메트 알리 아그자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진다. 여섯 시간의 대수술을 받고 나흘만에 깨어난 교황은 말했다. “내게 총을 쏜 형제를 위해 기도하자. 나는 이미 그를 용서했다.” 터키 옥중(獄中)에서 아그자가 교황을 위해 알라께 기도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