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벚꽃나무 아래서
강갑준
2005. 4. 25. 10:57
봄이오고, 꽃들이 여기저기서 폭죽처럼 터진다. 꽃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마는 그중에서도 가장 황홀하기는 벚꽃이 아닌가 한다. 벚꽃이 황홀함속에는 사람을 홀리는 그 무엇이 있다. 지극한 아름다움이 사람의 혼을 뺏는다면, 벚꽃 역시 그러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인 작가 시카구치 안고가 쓴‘활짝 핀 벚꽃 나무아래서’라는 소설을 보면, 사람의 혼을 빼앗는 벚꽃나무가 나온다. 인적이 드문 고갯마루에 오래된 벚꽃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은 모두 미쳐 죽고 만다.그래서 사람들은 벚꽃이 피는 봄날이면 벚꽃이 무서워서 그 고개를 잘 넘지 못한다. 그 산속에는 도적이 사는데, 그 도적들이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고 목숨을 앗아 간다면, 그곳의 벚꽃은 사람들의 혼을 빼앗고 목숨을 앗아 간다. ‘활짝 핀 벚꽃나무아래서’라는 소설은, 아름다움과 관능과 죽음이 기묘하게 결합된 분위기를 보여준다.
우리소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벚꽃나무는 이병주의 ‘천망’에서 나오는것이라 생각된다. 어느집 마당에 벚꽃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언제부턴가 그 꽃이 말할 수 없이 화사하게 핀다. 그 벚꽃은 쳐다보는 사람들의 넋을 빼앗을 만큼 아름답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귀신 붙은 나무라 생각하고, 그 벚꽃 때문에 그 집이 망해 간다고 쑥덕거린다. 마침내 집주인은 그 벚꽃나무를 파낸다. 그런데 벚꽃나무 아래서 시체가 나온다. 그 시체는 십년 전에 행방불명된 사람이다. 그래서 십 년 전에 그집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이 밝혀지게 된다. 벚꽃은 죽은 사람의 혼 때문에 그렇게 기괴스러울 정도로 황홀하게 피었던 것이다.
이처럼 벚꽃의 아룸다움은 너무나 황홀하기 때문에, 관능과 죽음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극단적인 아름다움속에는 항상 관능과 죽음의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며, 벚꽃이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또 벚꽃의 아름다움 속에는 깊은 적막감이 들어 있기도 하다. 가령 배용균 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보면, 활짝 핀 벚꽃나무 그늘 아래서 한 스님이 나무 의자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장면이 나온다. 벚꽃의 적막감을 잘 표현한 아름다운 장면인데, 이때 적막감이란 순간적인 죽음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귀신처럼 화사하게 핀 벚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미친 벚꽃나무의 열매라도 먹은 듯 황홀하고 아득하다. 활짝 핀 벚꽃은 사람들로 하여금 넋을 잃고 어떤 알수 없는 매혹의 적막감에 빠지게 만든다. 이때 사람들은 순간적인 죽음의 황홀을 맛보는지도 모른다.너무나 아름다운 벚꽃은 무섭다. 그것은 벨라돈나의 관능처럼 사람을 홀리고, 아트로포스처럼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다. 그렇치만 나는 활찍 핀 벚꽃나무 아래서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싶다. 그리고 그 적막감속에서 작은 죽음의 황홀을 맛보고 싶다.

일본인 작가 시카구치 안고가 쓴‘활짝 핀 벚꽃 나무아래서’라는 소설을 보면, 사람의 혼을 빼앗는 벚꽃나무가 나온다. 인적이 드문 고갯마루에 오래된 벚꽃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은 모두 미쳐 죽고 만다.그래서 사람들은 벚꽃이 피는 봄날이면 벚꽃이 무서워서 그 고개를 잘 넘지 못한다. 그 산속에는 도적이 사는데, 그 도적들이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고 목숨을 앗아 간다면, 그곳의 벚꽃은 사람들의 혼을 빼앗고 목숨을 앗아 간다. ‘활짝 핀 벚꽃나무아래서’라는 소설은, 아름다움과 관능과 죽음이 기묘하게 결합된 분위기를 보여준다.
우리소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벚꽃나무는 이병주의 ‘천망’에서 나오는것이라 생각된다. 어느집 마당에 벚꽃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언제부턴가 그 꽃이 말할 수 없이 화사하게 핀다. 그 벚꽃은 쳐다보는 사람들의 넋을 빼앗을 만큼 아름답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귀신 붙은 나무라 생각하고, 그 벚꽃 때문에 그 집이 망해 간다고 쑥덕거린다. 마침내 집주인은 그 벚꽃나무를 파낸다. 그런데 벚꽃나무 아래서 시체가 나온다. 그 시체는 십년 전에 행방불명된 사람이다. 그래서 십 년 전에 그집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이 밝혀지게 된다. 벚꽃은 죽은 사람의 혼 때문에 그렇게 기괴스러울 정도로 황홀하게 피었던 것이다.
이처럼 벚꽃의 아룸다움은 너무나 황홀하기 때문에, 관능과 죽음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극단적인 아름다움속에는 항상 관능과 죽음의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며, 벚꽃이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또 벚꽃의 아름다움 속에는 깊은 적막감이 들어 있기도 하다. 가령 배용균 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보면, 활짝 핀 벚꽃나무 그늘 아래서 한 스님이 나무 의자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장면이 나온다. 벚꽃의 적막감을 잘 표현한 아름다운 장면인데, 이때 적막감이란 순간적인 죽음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귀신처럼 화사하게 핀 벚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미친 벚꽃나무의 열매라도 먹은 듯 황홀하고 아득하다. 활짝 핀 벚꽃은 사람들로 하여금 넋을 잃고 어떤 알수 없는 매혹의 적막감에 빠지게 만든다. 이때 사람들은 순간적인 죽음의 황홀을 맛보는지도 모른다.너무나 아름다운 벚꽃은 무섭다. 그것은 벨라돈나의 관능처럼 사람을 홀리고, 아트로포스처럼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다. 그렇치만 나는 활찍 핀 벚꽃나무 아래서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싶다. 그리고 그 적막감속에서 작은 죽음의 황홀을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