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봄볕 터지는 제주를 온 몸으로 느낀다

강갑준 2005. 4. 19. 08:44
제주'봄 내음' 향긋

제주의 봄은 4월 들판을 수놓은 노란 유채꽃 물결로 시작한다. 그리고 괜시리 눈물나는 그 아름다운 배경에는 늘 신비스럽고 다정하며 포근한 한라산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가 바로 한라산”이라고들 한다.
지난 2월 ‘한라산 설경’을 찾아간 후 두 번째 봄나들이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2박 3일간의 일정이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많은 곳을 둘렀다. 성산일출봉, 우도, 섭지코지, 다랑쉬 오름’, 여미지, 주상절리 등 ….
이 나라에서 봄이 제일 먼저 오는 땅, 하늘 바다 산 모든 빛이 곱디고운 제주, 야자수로 단장한 가로수, 길 양쪽으로 펼쳐진 노란유채꽃, 나지막한 돌담과 주인의 출타를 알리는 정낭, 바다에서 물질에 여념이 없는 해녀, 그리고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 이렇듯 제주는 자연경관은 물론 문화풍습, 언어까지 육지와는 매우 다르다. 같이 동행한 지인께서는 "외지인들이 전입이 금지돼 제주 모습이 그대로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유채꽃 만발한 봄내음과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남국의 정취를 찾아 항공기는 만석이고, 가는 곳마다 관광객으로 눈길을 모았다. 더구나 자전거를 이용해 제주를 일주하는 학생(?)풍도 많았다. 여하튼 제주는 봄철로 살맛이 난 것 같다.

15일 2시30분발 김해공항을 출발하는 비행기는 만석. 일기예보도 맞는 것 같았다. 제주공항에 내린 시간이 오후 3시 40분경, 날은 쾌청했다. 오른쪽 어깨 너머로 눈을 베일 듯 수평선이 살아나고, 파도는 발아래 해안까지 밀려와 하얀 메밀꽃처럼 부서진다. 마중나온 김봉선님 댁에 들려, ‘만남의 차’ 한잔을 나누고, 일정에 따른 헌팅을 위해 작별을 하고 나섰다. 그리고 내일(16일) 성산포에서 합류키로 약속을 했다.
자동차로 내달리다 보니 가끔 나지막한 돌담너머에는 노란 유채꽃이 봄빛처럼 눈부시다. 일주도로를 따라오다 한컷하기로 하고 유채밭을 찾아 들었다. 너무 황홀한 느낌이었다, 더구나 바로 앞 화력풍차가 돌고 있는 모습은 감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세화 해변도로로 접어들어 ‘그리운 성산포’로 이어졌다. 모 방송국의 ‘올인’으로 관광객이 넘쳐난다는 섭지코지로 갔다. 벌써 서산에 해가 기울고, 나그네들을 잠자리로찾아들게 하는 시간이다. 성산포로 나오다 저 멀리 뚜렷한 그림자로 드리운 ‘한라산’의 정경이 발목을 붙들어 매었다. 산그늘이 너무 황홀했다.
이 섭지코지는 사진가들에게 유채꽃을 얹어 일출봉을 배경으로 한, 그리고 촛대바위의 일출로 포인트로 알려져 있는 곳. ‘올인’을 촬영한 곳은 태풍 매미로 날아가 버리고, 지금은 서울의 모재벌과 관이 공동투자해 관광명소로 만들 계획으로, 새로 집을 지어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물론 입장료도 받을 셈인 것 같았다.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돈이 뭔지, 돈만 된다면…. 국민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서는 재벌이나, 돈벌이만 궁리하는 관의 몹쓸 짓을 개탄케 한다.

다음날 (16일) 아침 해뜨는 시간이 아침 6시2분이라서 새벽 5시 10분경, 섭지코지로 달려갔다. 포인트는 두 군데라고 지인은 말한다. 한 곳은 우뚝 솟은 길 위, 또 한곳은 촛대바위가 있는 바다로 접어들어 한참 돌바위를 걸어 들어간 곳, 지인과 나는 돌바위를 이리저리 돌아 불그스렘하게 물드는 수평선쪽으로 삼각대를 설치하고 일출을 기다리며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6시가 조금 지나자, 동쪽 수평선에서 아니나 다를까 ‘오메가’가 떠올랐다. 흥분하기 시작했다. 바삐 손을 놀려 셧타를 눌러 댔다. 그 순간, 어제 김봉선님의 말이 생각났다. ‘오늘 날이 좋아 내일 아침 오메가를 볼수 있을 것입니다.’는 말이었다. 흘리는 말인줄 알았는데 정말 맞아 떨어졌다. 그만큼 김선생은 경험에서 일기를 뚫어보는 직관력을 갖고 있었다.
험하디 험한 돌위를 걸어 나오며, 그래도 이곳까지 와 오메가를 찍었다는 기쁜 안도감에 유채밭으로 가는 발길은 가벼웠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벌써 일출봉쪽을 향해 셔타를 눌려대는 사진가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 지기처럼 두런두런 말을 주고 받으며, 포인트를 찾아 이러저리 둘러보며 유채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곳엔 2월부터 3월말까지가 한창이고, 그 후엔 유채를 뽑아 버리고 ‘감자’를 심는다 했다. 그러자 동행한 지인께서 지금은 광선이 맞지 않으니 9시경이 되어야겠다고 한다. 그러자 그분도 맞다면서 가까운 곳에 가 아침이나 하자면서 같이 어울렸다. 참 인연이란 게 묘한 것이다. 그 분은 그런 연유로 하루종일 유채밭 포인트를 안내하느라 시간을 할애했다. 참 고마운 분이다.

우리는 섭지코지입구 가게에서 라면으로 간단히 아침을 하고, 다시 유채밭쪽으로 갔다. 약 2시간 정도 아침 광선에 촬영을 끝내고 나오려고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 김봉선님께서 ‘회사 일때문에 만날 수 없다’며 미안하다는 전달이었다. 어쩌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분께 그런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익히 김봉선씨를 잘 알고 있다면서, 그렇다면 자기가 하루 안내하겠다며 선뜻 나서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고마운지, 할말을 잃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 의기투합돼 바로 일정을 짰다. 우선 유채밭을 찾아 산간지방을 갔다가, 오후들어 우도에 가기로 했다. 우도가는 배는 10분에 한대 꼴, 나는 우도의 절경에 이번처럼 취해본 적이 없다. 소박한 어촌마을이면서 서정적인 정취가 풍겨들었다. 맥주맥 보리밭이며, 봄을 캐는 해녀 등 조그만 어촌마을이면서 꽤나 볼거리가 많았다. 대충 둘러보고, 우리는 다시 배를 이용, 성산쪽으로 나섰다.


오후 4시경, 아침에 들렀던 관광객을 위해 파종한 유채밭을 갔다. 가는 길에 봄을 즐기는 말, 특이한 돌담으로 둘러싼 묘소, 그리고 제주사람들의 한이 담긴 다랑쉬오름도 찾았다. 그러나 유채밭이 없어 그대로 돌아서야만 했다. "오늘, 어른들을 만나 즐거웠다"며 하루를 같이 한 그분이 바로 제주시로 간다기에,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고맙고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들뜸과 피곤함이 겹쳐선지 쉬이 단잠에 빠졌다. 다음날(17일) 12시 비행기 탑승을 위해, 우리는 일찍 채비를 하고 서귀포 여미지를 가기로 하고 나섰다. 가는 길에 대포리 ‘주상절리’도 한컷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미지는 이때쯤 좋았을 수련 등이 볼품없이 입장료만 비싼 것 같았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은 종업원들이 가슴에‘단결투쟁’이란 리본이었다. 뭐가 불만인지, 여미지를 찾는 관광객들의눈에 자기들 모습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아랑곳 하지 않은 모습에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상절리는 문화재로 지정돼, 나무로 길을 놓았으나 안내판이 없어, 그 명소의 아름다움에 흠집을 내는 것 같았다.
겨우 우리는 시간을 맞춰 제주공항에 도착, 아무탈 없이 일정을 잘 소화한 고마움에 건강한 마음으로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 트랙을 올랐다.
아무튼 즐거운 여행이었다. 더구나 하루날이 좋아 기대치 이상의 유채꽃을 본 것, 또한 초면에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하루를 보낸 것 등이 이번 여행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제주는 물빛 고운 곳이다. 그 물빛은 본디 섬사람의 심성을 닮았다. 또한 한라산이 빚어낸 360여개의 오름은 넉넉하고 아늑한 제주의 다른 모습이다.
이번 여행이 무엇을 이루었냐는 느낌보다 아쉬움이 앞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시간적 여유를 갖고 다시 한번 이곳 저곳을 찾고 싶은 심정 때문일까. 다시 오는 5월 철쭉이 한창일때 한라산 백록담을 찾을 것을 기약한다. 여전히 날씨는 찌푸리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김재용 회장님, 그리고 길손인 이문재 선생님께 온라인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특히 김회장님,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