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봄 내음 향긋하다
강갑준
2006. 2. 19. 18:52
화창한 날씨다. 한기(寒氣)속에서도 춘의(春意)는 감출 수 없다. 아파트의 매화(梅花)는 어느새 눈이 통통하게 부풀어 있다. 목연(木蓮)의 꽃자리도 솜털에 윤이 난다.
시후(時候)를 잊지 않고 계절만은 여전하다. 옛글에 보면 겨울은 다른 삼계(三季)의 휴지기(休止期)다. 말하자면 계절의 변전(變轉)에 ‘코머’ 하나를 찍고 잠시 쉬는 시기인 셈이다. 따라서 봄은 천의(天意)가 자연에 순응하는 계절이라고 했다. 다른 계절들이 서사시(敍事詩)라면 봄은 사뭇 서정시(抒情詩)의 경지다.
우리의 생활도 계절의 변환처럼 좀 ‘리드미컬’했으면 좋겠다. 사람에겐 추상(秋霜)같은 자세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천의가 자연에 순응하듯 춘기(春機)의 ‘리듬’도 가져봄직 하다.
옛사람들도‘마음은 가을의 정신으로, 행동은 봄의 정신으로 가라’고 가르쳤었다. 화신(花信)은 아직도 지평선(地平線) 저 쪽에서 머물러 있지만 우수(雨水)가 지나면 서서히 발길을 떼기 시작한다. 기온이 영상(零上)5도에 이르면 수목(樹木)들도 심호흡(深呼吸)을 한다. 수액(樹液)이 오르고 생기(生氣)를 찾는 것이다.
기상청이 기록을 보면 2월 중순께부터는 화신은 하루 20km의 속도로 북상(北上)한다. 제주도의 경우 산수유가 피기 시작하는 것이다. 금방 그 뒤를 따르는 매화전선(梅花前線)은 3주정도면 부산에 상륙, 줄달음을 친다. 우리나라는 이제 화신권(花信圈)에 접어든 셈이다.
매화의 뒤를 쫓는 화신은 개나리, 한달쯤의 시차를 두고 물들이기 시작한다. 개나리의 전선이 지나가면 그 뒤엔 갖가지 꽃들이 앞을 다투어 따라간다. 진달래, 벚꽃이 숨이 차서 달음박질을 쳐 온다. 이런 꽃전선의 상공에는 제비들이 날고 있다. 봄은 이처럼 무르익는 것이다.
중국의 어느 문인(文人)은 꽃과 달과 미인(美人)이 없으면 이 세상에 태어날 생각은 아예 하고 싶지 않다고 노래한 일이 있었다. 순정파(純情派)치고는 좀 지나친 것 같지만, 그런 것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면 지나친 감상(感傷)만도 아닐 것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도 봄이 오지 않는다는 생각은 상상(想像)만 해도 삭막하다. 몸도 마음도 함께 추워진다.
봄이 새들이 파랑 하늘을 나(飛)는 생명감(生命感), 꽃들이 자유분방하게 피어나는 정감(情感)마저 느낄 수 없는 일상(日常)이라면 실로 우리의 고달픔은 어디서 위로(慰勞)를 받겠는가.
오늘은 우수(雨水). 봄은 이제부터 나래를 펴기 시작한다. 봄맞이하러 기장을 다녀왔다. 북적거리는 재래시장에 가면 사람의 냄새가 향긋하다. 눈(雪)이 비로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인지라, 시장 좌판(坐板)엔, 쑥, 달래, 미역, 톳나물 등등 봄나물들이 손님을 부른다.
몇 년 전만 해도 ‘재래시장을 걱정했는데…….‘봄의 활기(活氣)가 넘친다.' 반백(半白)이 되어 , 재래시장을 찾아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봄(春)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