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봄 이야기
강갑준
2005. 2. 15. 13:47
‘窓의 이야기’
지난 13일 양산 통도사에 매화를 친견하러 갔다. 그러나 매화는 봉오리를 내 밀다 추위 탓에 수그렸다. 그러나 청향(淸香)은 비길 데를 몰라 한다. 봄이 왔건만 허전하다. 이 절지기 월하 노승이 입적해 그런가……. 한참 골똘해진다. 그 노승(老僧)이 불편한 노신(老身)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입적할 때까지 매화를 보고 두 눈을 감고 묵상(黙想)에..., 어찌 노승(老僧)이 기(氣)가 소멸해서인지 매화는 꽃을 필려 하지 않는다.
지난해 통도사, 선암사 매화를 올린다. 아직 추위가 매서워 그런지 아직 매화가 꽃을 내밀지 않는다. 지난해 보다 매화가 안좋으려나……. 하도 시절이 하수 상하니, 매화도 그런가?
지난 13일 양산 통도사에 매화를 친견하러 갔다. 그러나 매화는 봉오리를 내 밀다 추위 탓에 수그렸다. 그러나 청향(淸香)은 비길 데를 몰라 한다. 봄이 왔건만 허전하다. 이 절지기 월하 노승이 입적해 그런가……. 한참 골똘해진다. 그 노승(老僧)이 불편한 노신(老身)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입적할 때까지 매화를 보고 두 눈을 감고 묵상(黙想)에..., 어찌 노승(老僧)이 기(氣)가 소멸해서인지 매화는 꽃을 필려 하지 않는다.
지난해 통도사, 선암사 매화를 올린다. 아직 추위가 매서워 그런지 아직 매화가 꽃을 내밀지 않는다. 지난해 보다 매화가 안좋으려나……. 하도 시절이 하수 상하니, 매화도 그런가?
“머언 산 청운산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이라고 박목월의 ‘청노루’는 시작된다. 박목월은 봄을 배경으로 하여 많은 시를 지은 시인이다. 그의 ‘윤사월’이란 시는“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 이라고 시작되고, 또 ‘산도화’란 시에는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라는 구절이 나온다. 박목월의 시에서 봄은 매우 조용하게 온다. 봄은 어디선가 눈 녹은 물이 흐르고, 산도화 두어 송이 벙글어지고, 송화가루 말리는 가운데 조용히 찾아온다.
그리고 봄은 눈먼 소녀가 홀로 지키고 있는 외딴 집처럼 적적하고 외로운 공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면, 그 변화는 아주 고요하고 아득하게 찾아오며 또한 우리에게 아주 막막하고 외로은 느낌을 준다. 겨울내내 잊고 있었던 음악을 봄은 다시 들려준다. 그 음악은 아름답고 애절하다. 그런데 그 음악은 아주 희미해서 우리 몸의 온 감각으로 미세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또 그 음악은 우리가 상실한 채 살아가는 그 무엇을 새삼 환기시킴으로써 우리의 외로움을 더욱 짙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봄이 되면, 나도 ‘윤사월’속의 눈먼 처녀처럼,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산골 집 툇마루에 앉아서 하염없이 꾀꼬리 소리에 취하고 싶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곳은 없어져 버렸고, 또 그런 곳이 있다고 해도 그러기에는 쑥스럽다. 내가 봄을 즐기는 공간은 그것과 좀 다르다. 나는 박목월만큼 봄을 깊이 만나기가 불가능하다. 지금의 봄은 예전의 봄과 같지 않고, 나의 감각이 박목월의 감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대로 봄의 미세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난다. 그 첫 번째 공간은 한적한 해운대‘ 청사포’의 물가이다. 겨울부터 초봄까지 ‘해돋이’ 사진작업을 한다. 새벽길을 나서 아침 ‘해돋이’의 숨은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는 마음은 봄을 고요하게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이때 고요함은 적막하면서 아늑한 봄기운을 불러 들이는 것이다
.내가 봄을 즐기는 두 번째 공간은 바로 우리 동네이다. 우리 동네는 아파트 촌으로 장산이 멀리 보인다. 그리고 아파트 경계를 중심으로 소공원이 조성되 있다. 인공의 쉼터이지만, 봄이 되면 그곳에 개나리와 벚꽃이 핀다. 또 반가운 매화도 봄을 시샘하 듯 꽃망울을 터뜨리며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러나 자연은 아무리 화려한 꽃들로 치장을 해도 더욱 아름답고 경이로울뿐, 천박해 보이는 경우가 없다. 개나리 발랄함도 그러하고, 진달래의 수줍은 홍조도 그러하고, 벚꽃의 못 말리는 화사함도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진달래의 아름다움이 가장 봄을 봅답게 한다. 진달래는 가까이서 볼 때보다 다소 멀리서 볼때가 더 아름답다. 소나무나 다른 키 큰 나무들 사이로 진달래가 피어있는 산억덕을 쳐다보면, 처음에는 진달래꽃이 핀 것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다가 진달래꽃이 더 많이 피면, 산 언덕은 마치 수줍은 처녀의 귓덜미처럼 보일 듯 말 듯 붉어진다. 그렇게 보이는 진달래꽃은 이미 눈에 보이는 꽃이라기보다는 마음으로 보이는 은밀한 봄기운이다. 그리나 이렇게 만나는 봄기운의 공간도 지난 몇 년 사이에 크게 줄어들었다. 많은 산언덕과 빈터들이 훼쏜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요즘은 개나리나 진달래나 벚꽃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조금밖에 남지 안았다.
내가 봄을 만나곤 했던 세 번째 공간은 금정산 자락이다. 금정산 자락, 부산의 진산이다.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은 외딴 암자에 내가 아는 분이 한분 사신다. 그분은 범어사에서 출가, 금정산에서 자연과 아주 가까운 삶을 산다. 나는 도시가 지겨우면 가끔 그분이 사시는 암자로 가서 자연과 계절을 느끼러 간다. 특히 봄이되면 대나무의 푸르름이 마음으로 더 고요하게 하고, 부드러운 흙을 밟은 것들이 충족감을 준다.
이처럼 나는 봄을 만나는 세 개의 아름다운 공간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난 몇 년 사이에 크게 훼손되었다. 이제 나는 그만큼 봄을 적게 만날 수밖에 없다. 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철새가 그러하듯 와도 되는 곳에만 온다. 황폐해진 곳, 오염된 곳에 오는 봄은 진정한 봄이 아니라 단순히‘ 기온이 높아진 말씨’만 오는 것이다.
우리는 박목월이 노래한‘청노루’와 ‘윤사월’의 그 고요한 공간과 적막하고 아름다운 봄을 오래전에 상실했다. 그리고 이제는 조용히 산책을 할 곳도 크게 줄었다. 봄이 점점 봄 같지 않은 봄이 되어가는 세상의 시끄러움 속에서, 나는 어디에서 봄기운을 만나 그것으로 나의 마음을 데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