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부산에도 첫눈이 내렸다.

강갑준 2005. 12. 17. 23:17


첫 눈이 내렸다는 보도다. 그러나 첫눈은 대개 오래 내리지 않는다. 다른 지방에서 내리고 있는 눈이 강한 계절풍을 타고 날려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첫눈은 땅에 쌓이지도 않은채 멎는게 보통이다. 그런데도 금정산은 수북히 쌓였다한다. 이렇게 첫눈과 초적설(初積雪)이 겹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서설(瑞雪)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먼 산이 하얗게 덮이고, 매연에 그을었던 지붕들이 순백으로 단장하고......., 瑞雪이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눈내리는 풍경은 아름답고 곱게 보인다.

벽암록(碧巖錄)에 은완이성설(銀椀裏盛雪)이라는 말이 있다. 한점 티없이 고운 백은(白銀)의 접시에 흰 눈을 담는다는 뜻이다. 중국의 옛 선승(禪僧)에 파능선사(巴陵禪師)가 있었다. 그에게 어느 승(僧)이 찾아와 “선(禪)이란 뭣이냐”고 물었다. 이때 대답한 말이다. 은접시나 눈이나 모두가 희다. 그리고 청정(淸淨)하다. 티없이 맑은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 淸淨은 언제나 부정(不淨)과 대비된다. 적어도 은근히 不淨을 연상시키는 것만은 틀림없다.

淸淨하다는 것에는 그러니까 不淨을 싫어하고 정(淨)을 싫어하고 淨을 찾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런 뜻에서는 완전히 맑은 것은 아니다.

눈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눈이 없을때의 풍경이 더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ns이 내리기 전후를 막론하고 우리네 주변의 풍경이나 우리네 마음속이 조금도 추(醜)하지 않다면 눈이 아무리 희맑아도 淸淨하다고 여기지않을 것이다. 따라서 티없이 맑은 마음씨를 가지려면 은접시의 흰색을 눈의 흰색으로 부정(否定)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고덕(高德)의 禪師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 심경(心境)이다. 범속(凡俗)의 우리에게는 그저 눈을 보고 아름답게 여기는 심정만이라도 잃지 않은게 중요하다.

눈은 모든 것을 씻어준다. 그러고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적어도 그러기를 우리는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그중에서도 특히 첫눈을 반기는가 보다. 눈은 땅위에 골고루 내린다. 서민주택위에도. 호화주택가에도 한결같이 내린다. 자갈치 생선장사 아줌마의 몸빼에도, 년말 ‘쇼핑’에 부산한 사장부인의 ‘밍크. 숄’위에도 골고루 눈이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