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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寫眞史)를 배운다(2)

강갑준 2007. 6. 3. 18:48

-사진 설명-지난 5월 G7으로 제주공항 착륙직전 찍은 것 입니다.-

‘사진사’를 공부할 때 이 작가를 빼놓고 논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 를 받는 대가이다. ‘순간의 선택’, 이는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에서 나온 말일지 모른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아니,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한 인간의 노력에서 ‘결정적 순간’의 개념은 대두될 수 있다.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은 1908년에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 태어나서 소년시절부터 카메라에 흥미를 갖고 있었으나 그의 희망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20세 때 파리에 나가 ‘앙드레 로뜨’에게 사사(師事)하다가 대학에서는 문학과 미술을 공부하였다.

그 무렵에 사진가 ‘E 아뜨게’와 ‘만레이’의 사진 작품에서 크게 감동된 바 있어 22세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게 되어 라이카 카메라를 입수하였는데, 평생 그는 라이카 카메라를 애용하였다. 1932년부터 2년간 스페인, 레지중해 연안, 멕시코, 미국 등지를 다니면서 각종 사진을 찍었다. 이때에 찍은 ‘페허(廢墟)에서 노는 아이들’은 그 시절의 대표작으로서 현실 속에서 비현실적인 것을 직감적으로 발견한다는 성질의 것으로, 미리부터 계획을 세워서 이미지를 짜내는 식이 아닌 것이었다.

그는 피사체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가 그것이 가장 의미 깊은 양상으로 나타났을 때, 또는 가장 사람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자세로 되었을 순간, 그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데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인간적 흥미가 지극히 강렬하게 나타난 점인데, 그는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의미를 사진에 표현하는 데에 전 노력을 경주했던 것이다.
2차 대전 중에는 프랑스군에 종군하여 영화사진반에 참가했으나 40년 독일군에 붙잡혀 수용소 신세가 되었는데, 몇 번이고 탈출을 기도하며 실패를 거듭하다가 겨우 목적을 달성하여 파리에 돌아와서는 항독(抗獨)지하운동에 참가했다. 이때부터 그는 프랑스의 저명한 예술가의 초상화를 찍기 시작하여 ‘마티스’‘브라크’ ‘G 루오’ 등의 내면정신의 깊이를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46년에 이르러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그의 대규모적인 작품전이 있었는데 그 후 그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47년에는 그와 ‘R 카파’ ‘D 시모어’ 가 중심이 되어 마그넘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중국, 인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을 여행하며 동양 민족의 생활과 그 풍토를 찍었는데, 중공이 정권을 잡기 전후의 민중의 혼란상태, 인도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태 등을 박진력 있는 것으로 표현하여 주목을 끌었다. 그 후 소련에 여행하여 공산주의 정권하의 민중의 일상생활모습을 찍어 ‘라이쯔’ ‘파리 마치’지 등에 발표하여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진가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의 사진 작품은 모두 트리밍이 없으며, 비연출(非演出)로서 ‘광선과 구도와 감정(感情)이 일치된 순간’, 즉 결정적 순간이 그의 사진이론의 기초로 되어 있다. 1966년 58세. 동경 케이오 백화점에서 [결정적 순간, 그 후] 라는 사진전을 열고, 1974년 이후. 그림과 디자인에 몰두하며 활동이 거의 없이 은둔 칩거하다가 2004년 별세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