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시름은 깊어가고...

강갑준 2006. 10. 23. 07:36

아직도 제법 따사로운 기운이 남아있긴 하지만, 기분 좋게 피부에 와 닿는 햇살이 낙엽 밟는 소리와 조화를 이루는 품이 완연한 가을임에 틀림없다. 낙엽 떨어지는 빈도가 높아갈수록 힘겹게 곁가지를 붙든 채 점점 다홍빛으로 물들어 가는 감들은 겨울의 초입을 예고하는 양 저마다 고개를 떨구고 있다. 가을은 참 오묘한 계절이다. 풍성한 수확의 이면엔 힘겨운 월동이 대기하고 있다. 화사한 듯 아름다운 단풍 너머에는 앙상한 가지들이 즐비하다. 얻음의 시간인 동시에 잃음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바라보는 것조차 부담될 만큼 탐스런 둥근 달의 언저리에 드문드문 애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줄기만 남았을 때, 비로소 봄과 여름에 그토록 무성하던 꽃과 잎새들이 한갓 헛된 것이었음을 알 것이다”라고 일갈하는 법구경(法句經)이 제격인 시기라고나 할까.

그런데 한가하게 세월 타령만 하기에는 우리 주변에 산적해 있는 난제가 껄끄럽기만 하다. 동북 공정으로부터 독도와 일명 ‘이어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북핵 문제에 이르기까지 말끔히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디 그뿐이랴.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유가의 고공 행진, 부동산 정책과 경기 부양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해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어나온다. 수입은 시원치 않은데 세금은 나날이 늘어가니 한숨이 저절로 나올 밖에.

경기가 이렇다 보니 도덕과 윤리가 퇴색한 자리엔 어김없이 각종 범죄가 들끓는다. 정치며 경제며 민생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 온갖 살풍경(殺風景)이 만연해 있다.그러나 우리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은근과 끈기 그리고 슬기로 이를 극복해 온 자랑스런 한민족이 아닌가. 오늘 우리에게 닥친 이 고난과 시련은 어쩌면 보다 진일보한 광영의 미래를 개척하는 기폭제인지도 모를 일이다.

일찍이 당나라 후기에 유미주의를 바탕으로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이상은(李商隱)의 애정가 중 한 구절은 그래서 오늘 이 시점에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남 직하다. “봄누에는 죽어서야 제 몸 실뽑기를 그치고, 촛불은 제 몸 다 태워 재가 되어야 비로소 눈물이 마른다.”(春蠶到死絲方盡 蠟燭成恢淚始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