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아침에...영혼의 소리를 듣는다

강갑준 2006. 11. 2. 06:30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밝아오는 대지에 인사한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세계의 위대한 침묵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만큼 침묵은 그들이 추구하는 신성함을 만나는 가장 근원적인 의식이 되어있다는 얘기다. 그들에게 있어 침묵은 육체와 마음의 절대적인 균형이다. 그들은 몸과 마음의 정화를 위해 침묵에 든다. 침묵의 목소리는 정성을 다해 귀 기울일 때만 들리는 신비한 우주의 언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많은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꼭 해야 할 말만 하면 된다. 그것도 핵심만을 끄집어내거나 간추려서 하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호들갑떨거나 너스레라든지 군더더기 같은 것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에 속한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는 것이야말로 무모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언어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른다.한데도 사람들은 그게 아니다.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일삼는다. 은연중에만 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한다. 남을 비방하는 말, 상대방을 폄훼하고 비하하는 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음모의 말. 우호적인 말도 여러번 하면 효과를 잃는 법인데, 하물며 남을 깎아 내리는 말이야 더 말할 것이 있을까. 남을 위해하려다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 수도 있다.

말 잘 하는 사람의 말엔 논리보다 더 고귀한 절도가 배어있다. 할 말만 하는 데서 오는 공감일 것이다. 선택과 조율의 여과 장치를 거쳐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말에서 느끼게 되는 짜릿한 긴장감 같은 것이다. 이런 말이 신뢰의 싹을 틔움은 우리들 언어 경험의 터득이다.

많은 말보다 어려운 것이 말 없는 침묵이다. 침묵은 말 이상의 언어이다. 말하지 않는데도 상대의 가슴을 뚫는 힘과 영혼을 흔들어놓는 감동의 메시지는 오히려 침묵으로부터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명상에 이르려면 침묵의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침묵은 외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예비 단계 같은 것이다. 침묵은 보고 듣는 감각을 접어 버릴 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 자락에 둥지를 틀게 되는 평화의 경계이다.

하루 중에 침묵 속에 열리는 시간이 아침이다. 새가 숲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나무가 품을 벌리고 온갖 풀과 꽃들이 이슬을 떨어내는 시간―아침은 저마다 침묵으로 맞는 투명한 시간이다. 이 시간엔 나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다들 입을 꼭 다물었으니 어차피 침묵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침묵의 시간에 나는 침묵의 의미를 마음 속에 새긴다. 눈을 지긋이 감고 몸과 마음을 긴장으로부터 풀어놓는 것이다. 이 때 맛보게 되는 몸과 마음의 균형은‘나’라는 존재까지도 잊게 한다. 무아의 경지에 몰입하는 것이다. 이 시간, 인근 도량의 목탁 소리는 마음속으로 흘러드는 영혼의 소리이다. 비몽사몽의 의식을 흔들어 깨우는 신의 음성이다.이따금 나는 이 투명한 침묵의 시간에 (부산 해운대)아파트 오솔길에 나선다. 바람이 실어오는 침묵의 향기를 코로 흠씬 맡는다. 내 생명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아침의 그 바람 앞에 침묵의 의미를 내 안에다 채워놓는 것이다. 나도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나를 에워싸고 있는 세계와 대면하고 싶다. 내가 갈구하려는 가장 신성한 것과도 만나고 싶다. 내가 침묵할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