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어느 가난한 선배의 이야기

강갑준 2008. 5. 15. 19:32

(이 글은 논-픽션(nonfiction)입니다. 주인공은 부산일보 문화부차장을 지냈고. 고인이 된 분입니다. 이름은 사자(死者) 명예를 위해 밝히지 않습니다.주 무대는 광복동 뒷골목 ‘양산박’, 70년대 언론인 문인들이 즐겨 찾던 곳 입니다. 막걸리 한잔 놓고 세상을 노래하던 멋쟁이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 떠나고, 임명수 시인정도가 생존 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란
풍족함보단 오히려 조금 모자라는 듯한
모습이 아닐까요?
상처받고 얼룩진 삶의 모습,
그리고 눈물.......,
그러나 그 속에서 훈훈하게 비치는 인간미.
거기서 우리는 더욱 진한 삶의 향기를 느낍니다.

배가 부른 만큼 우리는 어쩌면 삶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나 요즘은 확실히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물질의 풍요,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마음이 황폐해진다면 그건 씁쓸한 일입니다.
물질이 풍요로워져 우리 마음이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텐데, 물질에 매여 우리 마음이 피폐해진다면
그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겠지요.
젊은 시절 어느 유난히 술을 좋아했던 어느 원로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모처럼 생긴 원고료를 받아 가지고 오는 길에
그분은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답니다.
더욱이 집으로 오는 길목에는 곳곳에 선술집이 늘어서 있어
그곳을 지나쳐 오기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답니다.
마침내 마지막 술집, 추운방에서 자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생각한다면
마땅히 그냥 지나쳐야 옳았지만 도통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랍니다.
그리하여 딱 한잔 마시기로 하고 그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그 때의 술맛이 얼마나 꿀맛이었겠습니까.
딱 한잔만 마시고, 내려놓기 싫은 잔이었지만
힘없이 내려놓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 마시고 싶은 생각이야 간절했지만
이렇게 자꾸 축을 내다보면 쥐꼬리만한 원고료로
당장 먹을 양식도 못 마련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일어나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몽땅 그 원고료를 주어버렸습니다.
그날 밤, 그 분은 아내에게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오다가 하도 목이 말라서 딱 한 잔만 마셨노라고,
그래서 정말 미안하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분의 아내는 참으로 잘했다.
다음부터는 한 잔만 마시지 말고 드시고 싶은 만큼 드셔라.
설마 우리가 굶어죽기야 하겠느냐, 그랬답니다.
그 순간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 분은 말없이 돌아누웠는데
아내도 마찬가지로 돌아누워 한없이 베겟잇을 적시더라고요.

세상에 어떤 사람이 가난하기를 원하겠습니까.
가난은 때때로 삶으로 하여금 그 위세를 떨어뜨리고 추하게 만들기도 하며
이루고자 하는 일도 제대로 성취할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가난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고 벗어나고 싶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석가는 그보다‘ 마음의 가난’을 제일 두려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물질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지만 물질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실상 우리는 그러한 현상을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 볼수가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가 반드시
불행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비록 헐벗고 철따라 갈아입을 옷이 없어도 언지나 즐겁게
살아가는 가정을 우리는 흔히 볼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
가족간의 반목과 질시, 돈 때문에 일어난 싸움으로 만신창이가
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것은 곧 물질이 그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난을 벗어나려는 생각에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