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연꽃 이야기
강갑준
2005. 7. 31. 20:29
여름이면 경주 서출지를 찿아 연꽃을 본다. 대구 영남대 ‘삼천지’ 못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곳의 연꽃의 무수히 꽃등을 밝히는 것을 연상한다. 연꽃은 그 기품으로나 아름다움으로나 향기로나 꽃 중의 꽃으로 꼽혀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상찬받는다.
인도 원산의 연꽃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까.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서 힌트를 얻는다.
부처는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뒤에 굶어 죽어가는 한 여인의 옷을 얻어 입게 된다. 그 옷을 빨려고 가까운 못으로 걸어가자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났으며, 옷을 빤 못에서도 연꽃이 피어났다. 그로부터 스님들은 그 못에 이르러 가사를 물에 적셔 입고 연꽃 씨앗을 얻어가는 것이 순례의 절차였다. 순례 유학승에 의해 연꽃 씨앗이 운반되어 한반도에 뿌려 졌을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꽃을 드니 미소 짓다’ 라는 황충상 소설가의 제목은, 부처님이 제자들을 향해 말없이 연꽃을 들자 카시아파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지었다는 염화시중의 이야기에서 따 온 것이다. 그 이심전심, 교외별전의 미소를 연꽃은 고이 간직하고 피어난다. 이렇듯 불교에서 뜻이 심화된 연꽃은 진흙에 뿌리내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때문에 번뇌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법성을 나타내며, 부처의 세계는 연화장(蓮花藏)이라 불리고, 부처나 보살의 자리는 연꽃자리는 연화대(蓮花臺)로 표현되어 많은 탑이나 부도에도 모습을 보인다.
연꽃이라면 인당수 푸른 물에 빠져들어간 심청이와 ‘부생육기(浮生六記)’의 운(芸)의 이름이 머리에 떠오른다.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백석에 팔려간 심청이는 드디어 연꽃 속에서 다시 살아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
‘부생육기’는 18세기 청나라 때의 화가인 심복(沈復)의 자서진인데, 운과의 사랑을 담은 부분이 특히 애틋하여 감동을 준다. 연꽃이 오므라질 저녁이면 그 꽃 안에 차를 넣어 향내에 재웠다가 이튼날 새벽 꺼내서 낭군에게 달여 내오는 운의 모습, 그 운이 저 세상 사람이 된 뒤 애끓는 마음으로 풍진 세파에 시달리는 심복의 기구한 삶.
연은 생각과는 달리 수련과에 든다. 그런데 ‘불교학 사전’을 들춰보니, 수련을 바로 우담바라라고 하며, 그 가운데서도 푸른 꽃이 피는 수련을 높이 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대구 삼천지 못에는 연잎이 날로 무성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마음먹고 찾아가면 언제나 연꽃은 피어 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연꽃은 아직 안 피는거요?” 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진가에게 물었다.“왜요? 안 피는 때가 없지요.” “그런데 지금은 없잖소.” “절에 공양을 올리려고 아침 일찍 딴답니다. 저기 작은 배가 있잖아요.”
그말에 나는 웬지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저 넓은 연못의 연꽃들은 절에 바치기 위해 아침마다 새 연꽃 봉오리를 뽑아 올린다. 여름철 연꽃을 찾아 다닐때 마다 나는 가장 더러운 뻘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올리는 연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상투적인 말이 전형이다. 그러나 피지 못한 그 봉긋한 꽃 봉오리를 자른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었다. 그래서 연꽃은 더욱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장엄이 되는가.
연, 수련으로 대표되는 수생식물의 세계 또한 충분히 이색적이다. 경남의 우포늪에 자라는 가시연은 커다란 잎 가장자리가 위로 접혀 물에 뜬다. 그 큰 잎에 아이가 올라타고 있는 외국 사진을 본적도 있다. 흰꽃이 피는 어리연꽃과 노란꽃이 피는 노랑어리연꽃의 작은 화사함은 겸손하고 요염하다. 꽃이 하루밖에 안 피는 데도 그저 속절없을 뿐이다.
지난달 경주 어느 식당의 정원에 수련과 옹기에 노란 어리연 꽃이 눈길을 끌었다. 나도 모르게 한참 들여다보는데 주인이 다가와 줄기를 여러마디 잘라 주었다. 물속에 뻗어나가는 줄기마다 뿌리가 돋는 이것이 노랑어리연꽃이었다, 그는 길가는 나그네인 내게 수련의 거름으로 오징어다리를 써보라고 가르처 주기도 했건만, 수련과 오징어다리의 조합이 왠지 어렵게 여겨져서 연꽃도 키우지 않치만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다.
8월하순, 전만 무안에서는 연꽃축제가 열리고, 충남 아산 인취사에서는 여러 문화 예술인들이 ‘백련시사(白蓮詩社)’를 연다고 했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두 군데의 연꽃은 흰 연꽃이라는 특징이 있다. 연꽃을 달리 부용(芙蓉)이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과 관련하여 다움과 같은 시가 보인다.
부용꽃 피어 연못 가득 붉으니(芙蓉花發滿池紅)
사람들은 내 모습보다 예쁘다 하고는(人道芙蓉勝妾容)
아침에 내가 둑 위를 따랄 거닐면(朝日妾從堤上過)
어찌하여 사람들은 꽃은 보지 않을까(나만 볼까)(如何人不看芙蓉).
쓴 사람은 조선시대의 성천고을 기생으로 그 이름 역시 부용이라 했다. 사람들이 그 예쁘다는 꽃은 보지 않고 오히려 자기만 쳐다본다는, 뜻을 살짝 비튼 말 맵시가 자못 예쁘다. 그 모습 한번 보고만 싶어라.
인도 원산의 연꽃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까.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서 힌트를 얻는다.
부처는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뒤에 굶어 죽어가는 한 여인의 옷을 얻어 입게 된다. 그 옷을 빨려고 가까운 못으로 걸어가자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났으며, 옷을 빤 못에서도 연꽃이 피어났다. 그로부터 스님들은 그 못에 이르러 가사를 물에 적셔 입고 연꽃 씨앗을 얻어가는 것이 순례의 절차였다. 순례 유학승에 의해 연꽃 씨앗이 운반되어 한반도에 뿌려 졌을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꽃을 드니 미소 짓다’ 라는 황충상 소설가의 제목은, 부처님이 제자들을 향해 말없이 연꽃을 들자 카시아파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지었다는 염화시중의 이야기에서 따 온 것이다. 그 이심전심, 교외별전의 미소를 연꽃은 고이 간직하고 피어난다. 이렇듯 불교에서 뜻이 심화된 연꽃은 진흙에 뿌리내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때문에 번뇌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법성을 나타내며, 부처의 세계는 연화장(蓮花藏)이라 불리고, 부처나 보살의 자리는 연꽃자리는 연화대(蓮花臺)로 표현되어 많은 탑이나 부도에도 모습을 보인다.
연꽃이라면 인당수 푸른 물에 빠져들어간 심청이와 ‘부생육기(浮生六記)’의 운(芸)의 이름이 머리에 떠오른다.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백석에 팔려간 심청이는 드디어 연꽃 속에서 다시 살아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
‘부생육기’는 18세기 청나라 때의 화가인 심복(沈復)의 자서진인데, 운과의 사랑을 담은 부분이 특히 애틋하여 감동을 준다. 연꽃이 오므라질 저녁이면 그 꽃 안에 차를 넣어 향내에 재웠다가 이튼날 새벽 꺼내서 낭군에게 달여 내오는 운의 모습, 그 운이 저 세상 사람이 된 뒤 애끓는 마음으로 풍진 세파에 시달리는 심복의 기구한 삶.
연은 생각과는 달리 수련과에 든다. 그런데 ‘불교학 사전’을 들춰보니, 수련을 바로 우담바라라고 하며, 그 가운데서도 푸른 꽃이 피는 수련을 높이 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대구 삼천지 못에는 연잎이 날로 무성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마음먹고 찾아가면 언제나 연꽃은 피어 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연꽃은 아직 안 피는거요?” 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진가에게 물었다.“왜요? 안 피는 때가 없지요.” “그런데 지금은 없잖소.” “절에 공양을 올리려고 아침 일찍 딴답니다. 저기 작은 배가 있잖아요.”
그말에 나는 웬지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저 넓은 연못의 연꽃들은 절에 바치기 위해 아침마다 새 연꽃 봉오리를 뽑아 올린다. 여름철 연꽃을 찾아 다닐때 마다 나는 가장 더러운 뻘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올리는 연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상투적인 말이 전형이다. 그러나 피지 못한 그 봉긋한 꽃 봉오리를 자른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었다. 그래서 연꽃은 더욱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장엄이 되는가.
연, 수련으로 대표되는 수생식물의 세계 또한 충분히 이색적이다. 경남의 우포늪에 자라는 가시연은 커다란 잎 가장자리가 위로 접혀 물에 뜬다. 그 큰 잎에 아이가 올라타고 있는 외국 사진을 본적도 있다. 흰꽃이 피는 어리연꽃과 노란꽃이 피는 노랑어리연꽃의 작은 화사함은 겸손하고 요염하다. 꽃이 하루밖에 안 피는 데도 그저 속절없을 뿐이다.
지난달 경주 어느 식당의 정원에 수련과 옹기에 노란 어리연 꽃이 눈길을 끌었다. 나도 모르게 한참 들여다보는데 주인이 다가와 줄기를 여러마디 잘라 주었다. 물속에 뻗어나가는 줄기마다 뿌리가 돋는 이것이 노랑어리연꽃이었다, 그는 길가는 나그네인 내게 수련의 거름으로 오징어다리를 써보라고 가르처 주기도 했건만, 수련과 오징어다리의 조합이 왠지 어렵게 여겨져서 연꽃도 키우지 않치만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다.
8월하순, 전만 무안에서는 연꽃축제가 열리고, 충남 아산 인취사에서는 여러 문화 예술인들이 ‘백련시사(白蓮詩社)’를 연다고 했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두 군데의 연꽃은 흰 연꽃이라는 특징이 있다. 연꽃을 달리 부용(芙蓉)이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과 관련하여 다움과 같은 시가 보인다.
부용꽃 피어 연못 가득 붉으니(芙蓉花發滿池紅)
사람들은 내 모습보다 예쁘다 하고는(人道芙蓉勝妾容)
아침에 내가 둑 위를 따랄 거닐면(朝日妾從堤上過)
어찌하여 사람들은 꽃은 보지 않을까(나만 볼까)(如何人不看芙蓉).
쓴 사람은 조선시대의 성천고을 기생으로 그 이름 역시 부용이라 했다. 사람들이 그 예쁘다는 꽃은 보지 않고 오히려 자기만 쳐다본다는, 뜻을 살짝 비튼 말 맵시가 자못 예쁘다. 그 모습 한번 보고만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