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염화미소(拈華微笑)
강갑준
2008. 3. 24. 19:45
김파라(金波羅)라는 꽃을 따서 여러 제자들 앞에 보였다.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해 그저 묵묵히 앉아있었다.
그런데 가섭(迦葉) 존자(尊者)만 혼자 빙그레 미소 지었다.
여기서 염화미소(拈華微笑)라는 말이 나왔다.
석가의 뜻을 알아 차렸는지. 알았다 해도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아 차렸는지 알길 이 없다. 그것은 가섭과
석가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도시 가섭이 얼마나 깨달았는지를 의심한다는 것부터가
불도(佛道)를 전혀 모르는, 소견 좁은 탓일는지도 모른다.
파안 미소한 가섭을 보고 석가도 흡족했었다면
그의 뜻이 충분히 전달됐다고 봤기 때문이었을 것이
그러나 알 듯도 해서 웃는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석가의 마음이란 오인(悟人)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알아차릴 길이 없다.
그만큼 깊은게 석가의 마음이다. 따라서
그저 알듯 모를 듯 하면서도 알았노라고 미소를 짓는다고
석가가 간파(看破)못할 까닭이 없다.
또 그래야 얘기가 된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알듯 모를 듯한 일들이 너무도 많다.
알듯 모를듯하면서도 아는 체 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이러는 사이에 여러 가지 단층(斷層)이 깊어만 가고,
우리네 사회생활에는 과격한 행동주의가 점점 커져가는 것이다.
염화미소는 석가와 가섭사이에서만 가능했다.
미오(迷悟)의 우리에게는 바랄길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