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오늘은 입추

강갑준 2005. 8. 8. 00:19
아직도 여름은 지칠줄을 모르고 있다. 낮에 32도이상으로 타오른 지열(地熱)은 저녁에도 식지 않고 사람들을 숨막히게 만들고 있다.
눈부시게 번쩍이는 바다는 아직도 젊음의 광무(狂舞)를 부르고 있다. 숲은 아직도 뭉게구름하고만 대화를나누고 있고....
젊은 탓인가 보다. 그래서 어김없이 여름에서 가을로 움직이는 시간의 수레바퀴 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가 보다. 그래서 어찌다 잠을 설치다 뜰 한구석에서 들리는 벌레소리도 즐거운 젊음의 합창으로만 여겨 지는 가 보다.
『여름날에 너와 나 둘이서 세운 공중누각(空中樓閣), 바람과 태양이 네머리 위에서 놀고 있었다....,』
「엔드루〮. 랭」의 ‘가을의 밸라드’ 라는 시 첫귀절이다. 그런 흐뭇한 누각(樓閣)도 가을 바람 하나로 쓰러지고 만다. 그런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아직도 여름의 즐거운 꿈을 마냥 부풀리고 있다. 어리석은 때문일까. 뜰에서는 아직도 장미꽃이 더위에 지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달리아’ 만은 뻔뻔스럽도록 짙은 화장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젊음이 계절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달리아’도 멀지 않아 시들어 버릴 것이다. 그것을 ‘달리아’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저 오늘이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무지(無知)할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일까.
오늘은 입추(立秋).
역서(曆書)대로라면 오늘부터 입동(立冬)까지가 가을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는 가을은 아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코스모스’를 보기전에는 우린 아무래도 가을을 실감할 수 없는 것이다. 역시 어리석은 탓일까.
아침 저녁으로 제법 찬바람을 느끼려면 아직 한달은 더 기다려야한다. 매정한 피서객들이 바다를 버리는 것도 한 두주일 뒤의 일이다.
아직은 아무도 가을을 느끼지 못한다. 모두가 어리석은 ‘달리아’처럼 여름이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물기 잃은 장미처럼 가을이 빨리 오기를 바랄뿐이다. 이런저런 정념(情念)을 비웃듯이 냉엄하게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이와 함께 계절도 뒤바뀌어가고 있다. 계절은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살며시 소리없이 등뒤에서 다가와서 사람들의 덜미를 잡는 것이다.
이리하여 언제나 사람들은 계절에 뒤지며 산다. 또는 쫓겨가며 산다. 어리석은 탓일까.
어느새 입추,
멀지 않아 낙엽지는 가을이라는 예보다. 그래도 우리는 떨어지는 잎을 보기 전에는 가을을 생각하지 못한다. 미련(未練)때문일까. 아니면 가을이 달갑지 않은 때문일까. 정말로 우리가 어리석은 때문일까. 계절을 느끼기엔 너무나도 ‘오늘’을 넘기기가 가파른 고갯길이라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