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일본 ‘오사카’는 가까운 곳이다

강갑준 2004. 11. 2. 17:46
‘일본 오사카-스케치’


일본 ‘오사카’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곳이다. 그러나 정작 가보고 싶은 곳, 가보아야할 곳은 쉽게 가기 어렵다. 너무 가까운 탓이랴. 그래서 가본 곳보다 가보고 싶은 곳이 훨씬 많다.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야 할 사람, 보고 싶은 것이 더 많다. 그런 아쉬움이 더 많은 것은 세월 탓이랴.
아직도 꼬불꼬불한 골목길에 목조 건물이 남아 있는‘오사카’의 고풍스런 도시에는 도저히 신흥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가을 단풍의 정취가 ‘오사카성’ 주변에 깔려 있다. 나뭇잎이 질 때는 그것이 무슨나무든 똑 같다. 노랗게 물든 것이든, 빨갛게 물든 것이든 상관없다. 늙어 가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노인들에게는 국적이나 종족이 차이가 없다. 다만 사람들은 식물처럼 아름답게 단풍들지 못한다. 그것이 걱정이다.


일본 관서 지방의 중심이 바로 오사카이다. 인구 1천만 명의 대도시, 이곳의 관서 지방 경제권은 캐나다 경제권과 맞먹을 정도로 그 볼륨이 크다.
이 관서 지방 대표적인 도시는 오사카와 교토, 그러나 나는 어쩐지 오사카를 기장 좋아한다. 오사카는 닳고 닳은 상인의 도시인 것 같으면서도 해학이 있고 서민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가방을 던져 놓으면 우선 도톤보리(道頓堀)로 간다. 도톤보리는 오사카 제일의 번화가다. 이곳은 오사카 남쪽의 번화가로 소에몬초거리와 이미시메바지 거리 그리고 난바거리 등 5대환락가로 자리 잡고 있다.

에도시대에는 이곳에 가부키공연장이 있었고, 유곽(遊廓)과 요정이 즐비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술집, 음식점, 극장, 파친코 가게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먹고 노는 일이라면 일본 전체에서는 도톤보리를 당할 곳이 없다. 다코야키(문어구이)를 필두로, 게요리, 복요리, 오뎅, 우동, 스시, 사시미, 일본 전역에 없는 곳이 없는 갈비와 냉면까지 일본의 모든 음식은 이곳에 다 있다.

게요리는 하코다테의 털게가 유명하고, 우동은 시코쿠(四國)가 그 원조이지만, 오사카의 음식 솜씨는 일본 제일이므로 여기서 먹는 것이 본고장의 것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것이 없다.

지하철을 타고 도톤보리 거리의 千日前(센니치마에) 앞에 내린다. 돔형 지붕이 회랑처럼 뻗어 있는 이 거리의 입구에 서면, 그 붐비는 인파와 늘어선 가게, 그리고 진열된 물건들로 인해 일본 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는가 하는 것이 한눈에 느껴진다.


바로 이 거리의 입구, 고층 빌딩의 1층에 호젠지(法禪寺)라는 절이 있다. 1층은 자그마한 절, 그리고 그 위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고층건물, 절과 현대적인 빌딩의 언밸런스한 조화, 1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도시다운 풍경인 것이다.

오사카가 일본 문화의 중심이 된 것은 기원후 4세기경이고 이때 한반도와 중국 등 대륙의 문화가 들어왔으며, 서기 794년, 나라에 있던 일본의 수도가 교토로 옮겨지면서 오사카 교통의 요지가 되어서 크게 번성했다는 것이 오늘날 오사카를 설명하는 어떤 안내서의 책자에 나와 있지만, 그것 가지고는 설명이 부족하다. 아니 설명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대륙의 문화라는 표현으로 그 본질을 적당히 희석시키고 있는 것이다.


센니치마에의 회랑(回廊)을 가로 질러 나가면, 투명한 돔형 지붕이 끝나고, 오사카에선 가장 유명한 게요리집이 나온다. 이 게 요리집은 네온사인에 머리통이 쌀가마니만 한 커다란 게를 붙여 놓았는데, 한쪽 다리가 1m쯤되는 10개의 발을 하루 종일 올렸다 내렸다 한다.

바로 이 게요리집을 지나면 5층정도의 빌딩이 오디오 콤포넌트와 똑같이 생긴 일본의 저명한 니혼바시(日本橋)라는 이름의 다리가 나온다. 바닥엔 대리석이 붙여졌고, 난간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다리 아래로는 운하(運河)인 도톤보리 가와(江)가 흐른다.

해가 저물 무렵, 스낵바, 레스토랑, 술집, 카페의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고, 키가 30m쯤 되는 베트맨의 네온사인이 빌딩벽에서 달리기를 할 무렵이면, 니혼바시에 청춘 남녀들이 꼬이기 시작한다. 개중엔 떠꺼머리 고등학생들도 보이고, 학교가 파하고 곧장 이리로 달려온 듯한 여중생, 여고생들도 보인다.
그들은 삼삼오오, 혹은 둘이, 혹은 혼자 핸드폰을 들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괜히 지나가는 사람을 흘끔흘끔 바라보거나 멋쩍은 표정으로 도톤보리 운하를 바라보고 있는 여학생들도 있다. 그러고 서 있는 여학생들에게 10대 후반의 젊은 학생 하나가 쭈빗쭈빗다가 간다. 그리고는 서로 대화가 몇 마디 오고간 후 드디어 그들은 서로 어울려 어디론가 사라진다.

니혼바시(日本橋)
이곳은 청춘 남녀가 만나는 곳이다. 이 다리 위에 서 있다는 것은 바로 누군가가 프로포즈해 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여기에 서 있는 청춘 남녀는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도 황혼 무렵에 그 다리 위에서 한번 멎적게 서 있어 보았는데, 이미 노인(?)이 되어 버려서인지 아무도 거들려 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 다리 위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왕왕 볼수 있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춘기 남녀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병아리들이다.

쓰루하시 ‘가나’ 갈빗집


도톤보리에서 전철을 타고 북쪽으로 10분쯤 가면 鶴橋(쓰루하시)역이 있다. 쓰루하시, 이곳은 두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김치시장, 또 하나는 갈비집이다. 쓰루하시 시장 안을 들어가 보면 왼쪽 모퉁이를 돌면 김치가게의 연속이다. 이곳 김치가게의 주인들은 대부분 재일동포가 자리를 잡고 살게 되면서 부터이다. 징용이나, 징병 등으로 일본에 끌려와 이곳에 누러 앉은 재일동포도 있고, 일정때 돈벌이를 위해 일본에 건너왔다가 이곳에 눌러 앉은 사람도 있다.


쓰루하시가 속해 있는 동성구와 이쿠노쿠는 재일동포가 밀집해 살기로 유명한 곳, 그 숫자가 약16만명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자연 김치를 찾는 한국인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끝내 쓰루하시의 김치시장까지 발전하게 됐다 한다. 그리고 이 김치는 오사카의 명물이 됐고, 결국에는 일본 전체에 김치를 퍼뜨린 발원지가 됐다.


김치시장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바로 소고기 갈빗집, 일본인들도 요즘은 ‘가루비’라면 침을 흘리지만, 바로 그 갈비의 원조도 이곳이다. 그래서 이곳 시장통의 지하철이 다니는 밑을 들어서면 10여개 소의 갈비 가게가 줄지어 서 있다. 그중 가장 갈비를 철판에 구워 파는 집, 이를테면 대판야키이다. ‘가나’갈빗집에 오랜만에 들어선다. 대리석 바닥은 소기름으로 미끄러질 듯이 번들거리고, 실내에는 갈비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있으면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여종업원이 달려와 곧 적당히 양념이 밴 갈비가 도착한다. 철판을 적당히 가열한 후 그 위에 펼치듯이 양념 갈비를 쏟아 붓는데 널따란 쇠판에 갈비가 고루 펴지게 쏟아 붓는 것이 이 집의 기술이다.


고기 굽는 자욱한 연기, 양념 냄새가 코끝을 간지른다. 익기가 무섭게 갈비 한점을 입에 넣어 본다. 이 집의 소고기 육질은 아주 뛰어나서 입안에서 거의 녹을 지경으부드럽다. 거기에 참이슬 한잔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세상부러울것이 없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집의 결점이 있다면 상추값은 2백50엔씩 별도로 받는데. 젠장맞을, 그 상추 한 접시가 네. 다섯 장 정도이니, 우리 한국 사람이 양껏 먹으려면 상추 값만도 기만 원에 달할 지경이다. 내가 일본에서 가장 정떨어지는 일이 바로 이 채소 값까지 악착같이 받는가, 한마디로 너무 박절한 것이다. 김치 한 종지 추가에 3백엔, 상추 한 접시에 2백50엔, 뭐든지 시켰다 하면 곧 바로 돈으로 환산되니까 한마디로 주문하기가 겁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쓰루하시‘가나’갈비는 맛있다. 우리나라의 갈비 맛도 이집에 비할 수 없다. 갈비에 곱창, 그리고 간(기모), 천엽(센마이)까지 시켜서 맛을 보면 과연 쓰루하시‘가나갈비’는 음식을 잘하는 집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옛날, 이곳 쓰루하시가 있는 지역엔 백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1천년 전 河內國이니 攝津國 백제의 국가들이다. 그리고 오늘날도 이 근처엔 백제역이니, 백제절이니, 백제강이니 하는 지명들이 흩어져 있다. 쓰루하시, 이곳에 오면 왠지 아득한 옛날 생각이 난다. 무언지 모르지만 형언하기 어렵고 닿기 어려운, 저 유전자의 형질 속에서 잠들어 있는 그 무엇이 그리워진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곳은 그런 곳이다.


골목을 누비고, 그들이 물건을 사는 시장을 가보고,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느냐를 보려고 했다. 그리고 궂은 날씨지만 현장 사진을 찍었다. 남이 안 보는 것, 놓치는 것을 담으려고 했다. ‘아하~ 이런 곳이 있었구나’ ‘여기가 어디에요?’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는 곳을 찾았으나. 3박4일의 일정으론 불가능했다. 그러나 세상 걱정 없이 걸었던 순간들 잊을 수 없다. 저녁, ‘난바역’을 걸으면서 토스토 가게에서 맛본 뜨겁고 진한 커피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 100엔짜리 물건을 파는 점포이다. 매장은 약 130여평 가량이고, 주로 생활용품을 중소기업체로 부터 공급받아 팔고 있다, 제품이 양질이라 결혼준비하는 여성들도 자주 찾는다 한다. 약싹 빠른 일본인들이 불항타개책으로 생각해낸 '100엔 숍'이 인기를 끌자 , 돈이라면...우리나라 재벌들도 이 물품을 수입 '100엔숍' 같은 것을 개설한다는 보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