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풍수지리설-明堂

강갑준 2006. 10. 18. 17:16
대원군 이하응(李昰應)만큼 풍수지리설의 열렬한 신봉자도 없었다. 그는 대권을 잡기 전 땅의 신비를 기록한 비기류(秘記類)의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전국의 명당(明堂)자리를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충남 예산 덕산의 명당을 발견했다. 그리고 부친 남연군(南延君)의 묘소를 이곳으로 옮겼다.둘째 아들이 고종(高宗) 임금으로 등극하자 부친의 묘소를 명당에 써서 발복한 것으로 믿고 더욱 풍수설에 몰입했다.
경복궁 중수과정에서도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해태상을 광화문앞에 두도록 했다든지 그것도 모자라 관악산 꼭대기에 우물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을 넣어 화기를 진압토록 했다는 기록은 그가 풍수설의 신봉자였음을 잘 보여준다.

풍수설의 핵심은 지기(地氣)가 왕성한 곳을 ‘명당’이라 하여 이곳에 무덤을 쓰면 그 자손이 번창하고, 그곳에 집을 지으면 집안의 운세가 크게 떨친다는 것이다. 명당이란 집터의 경우 건물의 전방이고, 묘자리인 경우 무덤 앞에서 안산(案山)과의 사이 공간을 말하며,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에 둘러싸인 부분이다.명당은 다시 내명당과 외명당으로 구분되는데 내명당은 무덤이나 건물의 바로 앞을 말하고, 외명당은 내명당 밖에 있는 넓고 평탄한 곳을 말한다.원래 사람이 살 집터를 찾는 것이 주였으나 조선 후기부터 묘자리 명당을 찾는 것으로 변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묘자리 만이 아니라 땅 투기꾼들이 이런저런 ‘명당설’로 사람을 홀리는 일이 많다고 한다.연립주택 한 채를 지어도 지세가 ‘봉황이 알을 품은 형국’이어야 잘 팔린다는 얘기도 한다.신라말에 중국에서 전래된 풍수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땅속의 지기가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영향을 준다는 신비적 풍수설은 객관적으로는 전혀 설명이 불가능하다.

학계에서는 고려시대 호족들이 자기네 근거지를 명당으로 삼아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시켰던 것 이외는 풍수설의 긍정적 역할이 없었다고 한다.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풍수설을 “꿈속에서 꿈꾸는 것이고, 속이는 속에서 또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21세기 사람들이 명당 명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사진은 지난14일 한라산 장구목 Y계곡 능선. 가을이 절정으로 치달으며 울긋불긋한 단풍은 우리들을 산으로 불러들인다. 올 단풍은 가뭄으로 엽록소가 말라들어 제 빛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기상청의 예보다. 그러나 한라산은 오는20일에서 25일까지 절정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라산은 지금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제주도민 서명운동이 한창이고, 제주공항은 한라산 가을 단풍맞이 손님으로 북적대고 있다. 그러나 헬기를 타고 백록담을 내려다보니 침하상태가 갈수록 심한 것 같다. 영산(靈山)이란 물이 항상 고여 있어야 하는데 백두산은 용천수라 물이 솟아흐르나, 한라산은 건수, 빗물이 일시 모여 수량을 보이다가 약3일이 지나면 침수현상으로 물이 흔적도 없이 메말라 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