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한라산 산행기(2)

강갑준 2007. 6. 11. 20:04
6월8일 아침 7시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오른다. 영국의 시인 와일드는, ‘유토피아를 그려 놓치 않는 세계지도는 일견(一見)할 가치도 없다’고 했는데, 한라산 백록담에는 분명히 산행인 가슴속에 유토피아를 그려내게 하는 이국적(異國的)인 정서(情緖)가 있다.

한라산은 백록담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백록담에 올라보니 1.950m 한라산 정상은 마치 솥에 물을 담아 놓은 모양과 같은 것 같다. 이래서 부악(釜岳)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나 이해가 간다. 이 분화구 둘레는 약 4km, 옛날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백록(白鹿)을 희롱하며 놀았다 해서 백록담(白鹿潭)이라 불려졌다 한다.

옛 이야기는‘제주를 찾는 시인 묵객들이나 선비들이 꼭 한라산을 오르면서 이 백록담에서 아름다운 제주 산하를 한 눈에 내려보고, 산정(山頂)의 풍광을 줄겼다 하니, 그들은 모두가 백록과 더불어 놀았던 신선의 풍취를 닮으려 했을 것이다.

백록담의 실상은 그 깊이가 약 100m이고 넓이가 30여정보가 된다. 밑바닥이 약간 비스듬히 되어 있어서 물은 한쪽에 채워져 있다, 그리고 키 작은 구상나무와 고사목들 그리고 누운 향 나무등이 분화구의 정취를 나타내고 있다. 오른 김에 4km의 둔덕을 한바퀴 돌면서 제주 풍광을 들여다볼까 했으나 서벽쪽 둔덕이 눈에 심하게 훼손되어 동,서,남벽 만 둘러 보았다. 느낌은 비로소 산의 높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마치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듯한 환상을 맛 보았다.

아침해가 솟아 올랐으나. 바다를 감싼 해무(海霧)가 눈 아래 망망한 초원지대를 지나며 천만년 신비(神秘)에 싸여 숲을 꿰뚫고 한라산 정상으로 건너와 작은 몸을 감싼다. 그즈음 아직도 아침 안개속에 잠자던 오름들이 잠자리에서 서서히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는다.

멀리 성산일출봉이며 우도섬 전경이 번듯하게 드러나면서 손을 내밀면 손바닥으로 들어올 것 처럼 가까이 몰려 온다, 한라산 정상에서 아침 해돋이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이 너무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북쪽을 보니 복잡한 제주시가 너머 푸른 물위에 마치 철모를 덮어 놓거나 아니면 표류하는 나뭇조각처럼 수없이 떠 있는 다도해(多島海) 섬들을 볼 수 있었다. 남쪽으로 눈을 주면 서귀포와 중문 해안가에 떠 있는 섬들이 마치 데리고 노는 이들의 장난감처럼 귀엽게 보인다.

백록담에서 보는 한라산 정상 주위 풍광 또한 아름답다. 그것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과 우주에 대한 작은 상념(想念)들을 줄줄이 엮어 내개 하면서 어떤 외경(畏敬)의 경지로 빠지게 한다. 산정에 오른 사람만이 웅혼한 자연앞에 아주 왜소함을 비로소 확인하게 한다. 그러기에 이 산정에 서면, 사람이 누리는 시간과 사람이 사는 공간을 잊어버리고 신의 언어와 그 공간을 생각하게 된다.

삼신(三神)이 들놀이한다는 한라산, 신비한 영봉(靈峰)에서 인자(仁慈)를 얻게 되고, 기구한 산록(山麓)과 괴석(怪石)에서 유토피아를 스스로 익혔을 때 깊은 정 남겨두고 떠나기가 서러워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명호(鳴呼)라! 하고 울고 싶은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