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해운대 바다에서

강갑준 2004. 12. 6. 12:24
‘窓의 이미지’
일요일(5일)은 다른 일을 다 미룬채 ‘해운대’바닷가를 거닐었다. 겨울바다와 모래밭, 정말 낭만적 이었다. ‘쏴아’, 밀려드는 파도이 젊음 소리,한발짝 한발짝 내딛는 맨발의 걸음, 사각사각 모래의 속삭임이 너무 정겹게 들린다. 미포항에서 모래밭을 밟고 광안대교 야경을 둘러봤다.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아래 사진은 6일 아침 청사포에서 밀려드는 파도를 한컷 한것이다.)


해운대 바다 가까이 와 산지가 어느덧 8년이 지났다. 그동안 해운대 바다 가까이 살면서도 바다를 거닐어 본적은 거의 없었다. 맨발로 해변을 거닐기 까지 바다는 바다였고 나는 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어제 나는 이곳 바다에 내 맨발의 살갗을 내 주었다. 바다의 물결이 내 발에 와 닿을 때마다 나는 한없이 부드러운 바다의 감촉을 실감할 수 있었다.


먼 수평선에서부터 달려와 내발에 부서지는 바다의 속살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바다의 물결이 내 발등을 덮었다 사라질 때 마다 나는 발등에 쌓이는 부드러움의 퇴적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해운대 백사장은 한없이 부드러움으로 와 닿았다. 그것은 나의 발길을 잡지 않았다. 마치 마음껏 걸어 보라고 나를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 그 부드러움에 빠져 나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 보았다.


그 거리는 아득했다. 물결이 와 닿으면 바다와 만나고 물결이 사라지면 나와 만나며 나는 그 거리의 아득함을 잊었다. 그 순간 거리는 있으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걷고 있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현재의 몰입이었다. 시간도 거리도 잊은 자리, 그 순간의 자리는 한없이 편안했다. 해운대 미포 항에서 보는 낙조는 아름답다. 동백섬 소나무의 우듬지에 걸린 해가 바람에 흔들릴 때도 바다는 여전히 붉다. 흔들리는 것은 소나무 가지일 뿐 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는 해를 앞에 두고 나는 내게 묻는다. “너는 해를 보는가 아니면 손가락을 보는가?” 붉은 물결이 밀려와 다시 내발을 적신다.


해가 지는 바다에 서서 눈을 감는다. 바람이 다르다. 어제의 훈기가 묻어나던 바람이 이미 아니다. 바람에 찬기운이 베어 있다. 바다를 찾아온 바람은 지는 해처럼 그렇게 가슴에 스미는 톤으로 겨울을 말하고 있다. 여름날 은빛 물살처럼 가슴속에 일렁이던 얼굴들과 상념들이 모두들 순하게 침묵 속으로 떨어져 설익었던 시간들의 문을 닫는다.


대나무의 마디처럼 나는 그 모든 것을 버리는 결단을 통해서 아프게 성숙하는 시간을 예감한다. 언제나 뜻을 배반하는 삶에 대해서, 만남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리에 대해서 굵은 마디가 새겨지는 가슴의 아픔을 실감한다. 그리고 아직 내게 남은 회한을 물결에 실어 멀리 수평선까지 보낸다.
나는 걷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건 내 의지로 내 두 다리로 어딘들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대 바닷가를 걸으면서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게 좋다. 어떤 이는 모래를 보고 어떤 이는 하늘을 보고 또 어떤 이는 바삐 걷고 어떤 이는 천천히 걷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참 좋다.


‘잠깐’


사람이 너무 가까우 면 마찰과 갈등이 잦은 것이 인간사회의 일이다.그렇게 해서 생긴 작은 갈등은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반목으로 발전하는 것도 인간사회에 자주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