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11월이 깊어만 가고 있다

강갑준 2004. 11. 18. 16:23
‘窓의 스케치’
겨울 바람에 잎이랑 열매랑 훨훨 떨쳐버리고 빈 가지만 남은 잡목숲, 가랑잎을 밟으며 아침 햇살에 숲길을 거닐면, 문득 나는 내 몫의 삶을 이끌고 지금 어디쯤에 와 있을 가를 헤아리게 된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려 받을 수 없는 그 세월을 제대로 살아왔는 가를 돌이켜 볼때 나는 우울하다.


11월은 정체가 아리송하다. 소속도 분명치 않다.가을과 겨울의 고빗길에 있으니 말이다.보기에 따라서는 11월은 저물어 가는 가을이다. 그래서 만추라면 11월을 말한다.그러나 맑게 갠 날이어야 가을의 서정이 느껴진다. 을씨년스럽게 잔뜩 하늘이 찌푸린 날이면 바로 겨울의 황량함을 안겨주는 것이다.

같은 날씨도 사람에 따라 달리 느껴진다. 또한 똑같이 가을을 잘 노래하지만, 서양의 시인들은 감미로운 낭만을 안겨주는 10월을 즐겨 부른다. 여기서 비겨 한국의 시인들은 예부터 11월을 즐겨 불렀다.

청승맞은 생리때문에서만은 아닐 것이다.그저 구슬진 심경에서 젖어 들게 하는 일들이 많았고, 또 그런 심경에는 11월의 계절이 제일 어울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몽주가 죽임을 당한 후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된 이숭인(李崇仁)에게 이런 시가 있다.
불견정생구(不見鄭生久), 추풍우삽연(秋風又颯然), 신편최감송(新篇最堪誦), 광태경수린(狂態更誰燐)......
그대 못본 지도 오래였구료. 하마 가을 바람 쓸쓸히 부는데, 새로 지은 시(詩) 한편은 잘 읽었다면 이 몰골 뉘라서 가여워 하리......

이 시 속의 ‘가을’은 분명 11월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게 도은(陶隱)의 심경에 가잘 어울린 것이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단종(端宗)이 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양녕대군(讓寧大君)도 이렇게 노래했다.
용어귀하처(龍御歸何處), 수운기월중(愁雲起越中), 공산십월야(空山十月夜), 통곡소창궁(痛哭訴蒼穹)......
아아 님은 어디로 갔는가, 구름도 애닳이 감도는 영월(寧越)에 텅빈 10월의 밤 하늘을 향해 야속함을 울부짖는 이 마음이여......,

단종이 꼭 음(陰)10월에 죽었는지 얼핏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쩐지 꼭 그랬을 것만 같다. 또 설령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는 꼭 11월이라야 제일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사화에 말려들어 희천(熙川)에 유배되어 있던 김굉(金宏弼)이 다음과 같은 시도 음(陰)10월에 지은 것이라 짐작된다.

내 생애 어떤 가를 알고 싶거든 앞 강물 뒷동산에 물어나 보렴. 우리도 어느덧 11월에 접어 들었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문득 두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에 눈이 가면 갈피 잡을 수 없이 구슬진 감상(感傷)에 사로 잡히게 된다.

아름답던 단풍도 이젠 노오란 색깔로 바뀌고 그나마 다 떨어져가고 있다. 이슬을 담은 국화의 청초(淸楚)함도 텅빈 들에 홀로 핀 장미꽃의 오만스러움도 모두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헛된 앙탈 같게만 보이는 그런 11월이 깊어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