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토우(土偶)’슬픔

강갑준 2004. 12. 26. 17:35
‘토우’작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황토(黃土)로 작품을 구상하며 슬픈 세상을 노래하던 그 사람, 그러나 지금 ‘토우’들은 시류에 냉대를 받고 있다. 어촌 바닷가 언덕바지에 뭇사람들이 비난을 외면한 채 ‘토우 공원’을 조성, 그 고장 사람들로 원망(?)을 사기가 이젠 잊혀질 법도 한데……. “왜 그러냐고 묻자? “큰 힘을 동원, 산등성이를 파헤쳐 ‘토우 공원’입네 하고 있지만, 주민들과는 통 만남이 없어요, 또 수작을 해요, 소나무를 자르고, 원참!’

“그 말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토우공원’을 찾은 날 (2004.12,26), 필자는 놀랐다. 그 산자락에 수십 년씩 된 소나무가 수십 그루 짤려나가, 비닐에 쌓여 모퉁이에 방치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역 자치단체장 명의 글귀가 가관이다. 소나무병이 들어 벤다는 것.

그러나 한쪽 언덕은 정지 작업을 하며 무엇을 지으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 이래서, 그는 비난을 사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게 되였다. 이 ‘토우’작가 모씨는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언론에 거론된 인물, 그러나 요즘 근황은 알길 없고, 몇 년 전부터 병마에 시달리며 투병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필자는 ‘김열규’선생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글의 느낌을 이 ‘토우’ 작가에게 전한다.

직설적으로 ‘욕심을 버려야 한다’것이다. 병마-죽음, 이것은 삶이 그 자신의 숨결을 그리고 핏기 운을 다그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죽음을 잊으면 삶이 덩달아 잊어진다는 것이다. 몸서리, 비통과 탄식, 상실감과 허무, 그러면서도 엄숙함과 장중함, 우리는 이것들을 죽음과 더불어서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오늘 만난 ‘토우’도 핏기가 없이 그저 그들끼리 세상을 비웃고 있었다. 아시안 올림픽때 ‘벡스코’에서 합창을 하던 그 즐거운 ‘토우’들이 아니다.
그 많은 식솔 ‘토우’들의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 산자락에서 마구베넨 소나무 원혼들이 괴롭힘 속에 핏기를 잃고 있다. 내 눈엔 ‘토우’들이 알듯말듯 웅숭깊은 토로(吐露)속에 ‘괴테’의 말을 떠 올리게 한다. “고요한 마음을 지닌 채 산책을 하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삶의 모습을 관찰하라,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 수 있으리라.”욕심을 버리고 ‘토우’와 산책을 하면서 세상을 읽는 지혜로 생명의 노래를 읊으라는 말이다.

지난10월(?)이후 소나무가 베어 지면서 그렇게 ‘토우’들은 삶의 의지를 포기하고 있다. 주인은 몰라라 하고, 정든 소나무 그루터기가 생명을 다하는데 그들인들, 무슨 흥이 나 ‘합창’을 하겠소…….
마른 풍경을 흔드는 삭풍, 오후를 덮는 구름, 한기에 얼굴 가린 사람들이 겨울 풍경이 되는 주말, 흔들리는 건 나무만이 아니다. 모두 따뜻한 방이 그립다. 가슴을 더듬어 마음을 만져 보자. 마음을 데워 따뜻한 방 하나를 만들어 보자. 지금 흔들리는 토우(土偶)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