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희망은 늘, 보이지 않은 곳에
강갑준
2004. 12. 10. 20:58
“窓의 이야기”
기억의 저편을 꺼냅니다. 어렸을 때 고향인 영도섬, 어린 시절, 아침10시 오후4시 하루에 두 번 들어 올리던 ‘영도다리’는 늙디 늙어 제 몸을 추리지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건너다니지만 그 다리에 얽힌 애환을 알지 못합니다. 새벽 4시 통금 사이렌이 울면 나는 대평동 집에서 아침 영어 강좌를 들으려 미화당백화점 ‘여명 학원’에 다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도 대평동과 자갈치를 다니는 통선은 세월은 아랑곳 하지 않고 주인만 갈린 채 사람들을 싫어 나르고 있습니다.
기억의 저편을 꺼냅니다. 어렸을 때 고향인 영도섬, 어린 시절, 아침10시 오후4시 하루에 두 번 들어 올리던 ‘영도다리’는 늙디 늙어 제 몸을 추리지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건너다니지만 그 다리에 얽힌 애환을 알지 못합니다. 새벽 4시 통금 사이렌이 울면 나는 대평동 집에서 아침 영어 강좌를 들으려 미화당백화점 ‘여명 학원’에 다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도 대평동과 자갈치를 다니는 통선은 세월은 아랑곳 하지 않고 주인만 갈린 채 사람들을 싫어 나르고 있습니다.
수수(愁愁 )롭다. 지나가는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그것은 무한한 상실일 수도 있으며 또 무한한 도전일 수도 있다. 한 해의 마지막날, 때묻은 달력을 거둘때면, 우리는 유난히 시간을 체온과 맥락(脈絡)을 느낀다. 우리는 그 많은 날을 얼마나‘무시간(無時間)’속에 보냈는가? 오늘은 문득 그렇게 값없이 지나간 시간들이 뚝딱뚝딱 우리의 귓전을 울려주고 있다.
한해 의 하루라도 숙연히 시간의 의미와 밀도(密度)를 생각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는 때때로 시간에 끌려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슬기와 창조력을 가진 인간은 언제나 시간에 이끌리기 보다는 그 시간을 이끌고 가는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시간은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하나의 감각에 지난지 않을 수도 있다. 똑같은 분량의 시간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그 가치는 클 수도 있고, 또 하잘것없이 적을수도 있다. 시간을 부피로 느끼는 사람과 하나의 평면으로 느끼는 사람과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중국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인간에게 경고한바 있었다. 하루에 새벽은 두 번 거듭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 결단하지 않으면 하루는 또 값없이 어슬렁 어슬렁 지나가 버리고 만다. 저녁에 그 지나간 시간을 회오(悔悟)조차 하지 않으면 또 다음날의 새벽에도 새로운 시간의 그 싱싱한 생명력을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말한다.“시간의 귀중한 가치(價値)여!”라고. 그러나 사람들은 시간을 잘못 이용하고 있는 것을 쉽게 한탄하려 하지 않는다. ‘프랑스’철학자 ‘잔. 자크. 루소.’는 “시간을 악용하는 것은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이상의 커다란 시간낭비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다.
우리는 새삼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세상엔 시간을 악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치적 시간’ ‘경제적 시간’ ‘문화적 시간’...... 이런 시간들이 과연 온전하게 쓰여졌는지, 우리들은 한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시간의 생명은 곡 모든 가능성의 산실이며 희망의 등불이다.
짧은 인생을 시간의 낭비로 더욱 짧게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이것 저것 망설이며 시간을 낭비할만큼 길지는 않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마찬가지의 엄연한 현실이다.“어떻게 살아갈까” 망설이며 생각하고 있으면 벌써 시간은 지나가 버린다.
시간은 가능성을 잉태한 부단한 도전자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 우리는 시간의 전열(前列)을 가다듬어 내일의 시간에 도전하며 승리와 용기를 다해 보람찬 인생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