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불국사’ 단풍 경탄 할 뿐이다

강갑준 2004. 11. 6. 15:09
‘단풍 스케치’
지금 경주 불국사는 단풍이 한창, 5일 일본에 거주하는 분들 안내를 위해 다녀왔다. 너무 황홀함에 몇 컷을 했으나, 아름다운 단풍의 형체만 찍었다. 일본 ‘조선신보’사장을 역임한 분이 나이 들어 조국을 보고 싶어 찾은 마지막 여행에 동행한 것이다. 조금 더 젊을 때, 일찍 고국을 찾아왔어야 하는......,마음이 엿보였다. 역시 나이는 세월을 붙잡아 두지 않는다.


벌써 11월입니다./ 허공을 가르는 선득한 바람의 자국/ 가지 끝에 걸린 가을이 몸을 떱니다./ 우린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요. /발밑에 구르는 잎새 하나도 세상을 이토록 눈물나게 합니다./ 잎 지는 그날 나지막이 당신을 불러 봅니다./

단풍은 꽃같이 화려하고 또한 꽃처럼 덧없다. 단풍잎에는 가을의 색이 모두 들어 있다. 자연이 하는 일에 사람은 말을 잃는다. 다만 경탄 할 뿐이다.


감나무도 벚나무도 단풍이 들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낙엽의 대표는 단풍나무다. 단풍 구경은 가을이 제일이다. 붉게 물든 산에 맑은 햇빛이 비치면 산 전체가 불타오르듯 반짝인다. 잎이 달린 나뭇가지를 햇빛에 비쳐 보면 그물눈처럼 달린 섬세한 잎맥과 투명한 색깔에 말을 잊게 한다.


단풍, 그것은 나그넷길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는 영광의 모습, 낙엽수의 잎은 봄부터 가을까지 묵묵히 자기 일을 다한 뒤 마지막 길을 떠난다. 화려한 색동옷을 차려입고 몸을 날려 땅 위에 떨어진다.
분홍, 보라, 빨강, 노랑, 오렌지......, 가을 나무들은 화려하다. 같은 나무에서 떨어졌어도 가랑잎들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 서로 몸을 맞대고 있던 잎들에게도 저마다의 삶이 있었던 것이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집 가까이에서 얼마든지 귀여운 낙엽을 만날 수 있다. 잠시 길가에 발을 멈추고, 뒤집힌 가랑잎 하나를 뒤척이다가 어느 나무에서 떨어졌을까 하고 위를 쳐다본다.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가을의 단풍철이기에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리라.


낙엽을 쫓아 걷다 보면 어느새 낯선 골목에 들어서 있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고 작은 발견을 하기도 하고, 말을 걸어온 낯선 사람과 잠시 이야기도 나누어 본다

살갗에 스치는 바람이 쌀쌀한 것을 보니 가을이 깊어가나보다. 낙엽이 흩날리니 인적 없는 숲이라도 찾고 싶지만, 11월로 들어서자 오랫동안 만남을 기다려온 연인처럼 불국사 단풍을 다시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