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依於仁,游於藝’

강갑준 2004. 10. 20. 15:13
‘사진 출처’
삽입 사진은 지난 3월 선암사 매화, 그리고 5월 보성차밭 입니다. 가을비가 너무 가슴을 휘비고 들어 녹차 한잔에 마음을 갈무리 합니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스승들 중에서 누구를 제일 만나보고 싶으냐고 날더리 묻는다면, 내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이름은 孔子다. 칸트도 소크라테스도 꼭 접해 보고 싶은 철인들이지만 그러나 내게는 공자가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중학시절의 내 책상에는 언제나 ‘論語’가 놓여 있었다. 여름방학이면 꼭 ‘論語’를 한번 할아버님의 명령에 따라 읽었다. 아는 대목도 있었고 모르는 대목도 있었지만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의 첫 구절부터 시작하여 제일 마지막 구절‘不知信無以知也’까지를 다 읽고 나면 마음이 후련하였다. 몇 년 몇월 몇일 어디서 第一回讀이라고 ‘論語’ 첫장에 써 넣었다.


그 이듬해에는 할아버님이 새책을 사서 읽게 하였고 이번에는 濟二回讀이라고 썼다. 이렇게 해서 해마다 ‘論語’가 한권씩 늘어 지금 나에게는 여덟권의 ‘論語’가 있다. 그것을 볼때 마다 흡족한 기분을 느낀다. 지금도 글을 쓸때는 어릴때부터 읽어 온 ‘論語’를 한두 페이지씩 펼쳐 인용한다.


‘(論語)’는 나의 정신적 애인이요, 인생의 스승이다. 나는 孔子를 위대한 휴머니스트로 본다. 나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내 맛대로 孔子를 해석하고 孔子를 仰慕한다. 나는 인생의 지혜의 말씀이 到處에 깃들이고, 진리의 鑛脈이 어디나 번뜩이는 책이 ‘論語’라고 확신한다.
어느 儒學者가 ‘論語’를 가리켜 우주 제1의 책이라고 평한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멋이라는 말을 가장 깊고 높은 차원에서 쓴다면 孔子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멋이 있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孔子의 멋을 몇 토막 얼른 생각해 본다면, 孔子가 하루는 齊나라에 갔다가 韶(소)라는 음악을 들었다. 그 음악이 하두 좋아서 석달동안 寢食을 잊고 배우고 연습하고 감상했다. 나중에는 그 음악이 너무 좋아서 고기맛을 잊었다고 한다. 그만큼 心醉하고 恍惚하고 法悅를 느꼈다.


음악이 이렇게 좋은 줄은 나도 미처 몰랐는 快哉를 부르며 感歎하여 마지 않았다. 孔子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도덕만 아는 聖人君子가 결코 아니었다.
나는 ‘論語’에 나오는 孔子의 여러 말씀 중에 ‘依於仁, 游於藝’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孔子의 말에는 ‘仁에 依支해서 살고, 藝術속에서 놀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藝術에 논다’는 말은 간결한 표현이지만 내포된 의미는 深遠한다. 예술을 모르는 인간, 예술에서 生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멋을 모르는 者다. ‘游於藝’라고 말한 孔子는 참으로 인생의 깊은 眞美에 육박한 휴머니스트였다.


하루는 孔子가 네사람의 제자들과 對話를 주고 받는다. ‘늘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不平를 말하는데, 어떤 임금이 있어 너희들을 起用하여 마음대로 제 뜻을 펴게 한다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 네 弟子는 저마다 평소에 있던 제 뜻을 말한다.
孔子는종요히 듣고 있다가 ‘늦은 봄 새로 만든 옷을 입고, 젊은 청소년들과 같이 沐浴이나 한 다음 散策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돌아오고 싶다’고 인생의 멋을 말했다. 우리는 이런 孔子의 ‘游於藝’의 여유있는 철학을 배워야 한다.